
정부는 섬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매년 8월 8일을 ‘섬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섬은 국민에게 휴식과 여행의 공간이지만 주민에게는 삶의 터전이며, 여객선은 섬과 육지를 잇는 교통수단이자 생활물자를 운반하는 생명선이다.
해운기자단은 지난 6일부터 이틀간 한국해운조합의 협조로 여수에서 열린 ‘제7회 섬의 날’ 행사를 취재하고 오동도와 금오도, 안도를 찾았다. 현장 취재에는 이채익 한국해운조합 이사장을 비롯한 조합 임직원들이 함께했다.

기자단이 처음 찾은 곳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시작점인 오동도였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768m 길이의 방파제를 따라 걸으면 해안산책로와 동백나무숲에 닿는다. 방파제 대신 동백열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산책로에는 동백나무와 시누대가 빽빽하게 자라 한여름에도 그늘을 만든다. 남쪽 해안에는 소라바위와 병풍바위, 지붕바위, 코끼리바위, 용굴 등 파도가 빚어낸 기암절벽이 이어진다.

섬 정상에는 오동도등대가 자리 잡고 있다. 1952년 처음 불을 밝힌 등대는 2002년 높이 27m의 백색 팔각형 콘크리트 구조물로 개축됐다. 등대 불빛은 10초마다 한 번씩 반짝이며 최대 25해리, 약 46㎞ 떨어진 해상까지 도달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여수항과 광양항을 드나드는 선박과 남해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인근 홍보관에는 국내 등대의 역사와 항로표지 관련 자료가 전시돼 있다. 오동도등대는 선박의 안전항해를 지원하는 항로표지인 동시에 시민과 관광객에게 개방된 해양문화 공간이다.
오동도를 둘러본 기자단은 제7회 섬의 날 행사가 열린 여수세계박람회장으로 이동했다. 행정안전부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는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낭만충전, 섬’을 주제로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행사장에는 지방정부와 공공기관, 섬 관련 단체의 전시관이 마련됐다. 한국해운조합은 자체 선정한 ‘가보고 싶은 섬 20’을 걷기섬과 별밤섬, 밥상섬, 물놀이섬 등 네 가지 주제로 소개했다. 섬의 위치와 운항 선사, 항로 및 여객선 정보를 제공하고 방문객을 대상으로 섬 여행 상담도 진행했다.
기념식에서는 섬 발전 유공자에 대한 정부포상이 이뤄졌다. 한국해운조합은 도서주민의 교통권 보장과 연안여객선 현대화, 여객터미널 안전관리 및 섬 관광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1949년 설립된 한국해운조합은 도서민 여객선 운임지원과 연안여객선 현대화 지원, 전산매표시스템 운영 등을 수행하고 있다. 전국 24개 여객터미널을 운영하며 섬 여행 공모전과 관광 홍보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채익 한국해운조합 이사장은 “이번 표창은 도서주민의 이동권과 연안해운 발전을 위해 조합과 해운업계가 함께 노력한 성과”라며 “누구나 안전하고 편리하게 찾을 수 있는 섬을 만들고 연안여객선 중심의 해상관광을 활성화하겠다”고 말했다.
이튿날 기자단은 금오도로 향하기 위해 여수 돌산읍 신기항을 찾았다. 한림해운의 카페리선 ‘한림페리9호’는 신기항과 금오도 여천항을 약 25분 만에 연결한다.

한림페리9호는 총톤수 677톤, 여객정원 650명의 차도선이다. 승용차뿐 아니라 화물차와 탱크로리 등 대형 차량도 운송하며 차량 적재 허용중량은 207.354톤이다.
기자단이 승선한 날에도 생활물자를 실은 1톤 화물차와 우체국 차량이 함께 배에 올랐다. 여객선은 섬 주민과 관광객을 나르는 데 그치지 않고 식품과 생필품, 우편물과 택배를 공급하는 생활물류망 역할을 맡고 있었다.
섬 지역은 육지보다 택배 배송비가 많이 들고 일부 품목은 반입이 제한되기도 한다. 여객선 운항이 중단되면 주민 이동뿐 아니라 생활물자 공급도 영향을 받는다. 안정적인 여객선 운항이 섬 주민의 정주 여건과 직결되는 이유다.
금오도는 금오열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면사무소와 치안센터, 우체국, 보건진료소, 학교와 농협마트 등이 자리해 인근 섬 생활권의 중심 역할을 한다.
섬의 서쪽 해안에는 비렁길이 이어진다. ‘비렁’은 벼랑을 뜻하는 여수 사투리다. 남해안에서 보기 드문 해안단구와 절벽을 따라 조성된 비렁길은 전체 18.5㎞로, 다섯 개 코스로 나뉜다.
기자단은 함구미 선착장에서 미역널방과 송광사 터, 신선대를 지나 두포마을로 이어지는 1코스를 걸었다. 길이는 5㎞로 약 2시간이 걸리는 입문 코스다.
관광객에게 비렁길은 바다와 절벽을 감상하는 트레킹 코스지만 과거 주민들에게는 마을과 농지, 어장을 연결하는 생활로였다. 자동차도로가 놓이기 전 주민들은 이 길을 따라 땔감을 구하고 미역과 수산물을 운반했다.

코스 중간에 만나는 미역널방은 주민들이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을 지게로 옮겨 말리던 평평한 바위지대다. 해풍이 끊임없이 부는 절벽 위까지 미역을 운반했던 흔적은 비렁길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주민의 노동과 생계가 축적된 공간임을 보여준다.
금오도는 방풍나물 산지로도 알려져 있다. 따뜻한 기후와 해풍, 물 빠짐이 좋은 토양이 방풍 재배에 적합해 한때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이 됐다. 그러나 육지 재배 확대에 따른 가격 하락과 농촌 고령화로 생산 여건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비렁길 1코스에는 송광사 터도 남아 있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좋은 절터를 찾기 위해 나무로 만든 새 세 마리를 날렸고, 그중 한 마리가 금오도에 내려앉아 절을 세웠다는 ‘삼송광’ 전설이 전해진다. 현재는 건물 없이 절터의 흔적만 남아 있다.
비렁길 답사를 마친 기자단은 2010년 개통한 안도대교를 건너 안도로 향했다. 안도에는 해안을 따라 걷는 기러기길과 어촌마을이 조성돼 있지만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이라는 비극도 남아 있다.
1950년 8월 3일 안도 이야포 해상에 정박해 있던 피난선이 미군 소속으로 추정되는 전폭기의 기총사격을 받았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당시 선박에는 피난민 약 250명이 타고 있었으며 150여 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조사에서 희생자 5명의 신원을 공식 확인하고 이야포와 두룩여 해상에서 민간인이 미군의 불법적인 폭격으로 희생된 사실을 진실규명 결정했다. 다만 관련 문서와 명부 부족으로 전체 피해 규모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짧은 섬 여행이었지만 오동도와 금오도, 안도가 보여준 모습은 서로 달랐다. 오동도에는 항로를 밝히는 등대와 동백숲이 있었고, 금오도에는 여객선으로 이어지는 주민의 일상과 비렁길에 밴 노동의 역사가 있었다. 안도에서는 전쟁의 상처와 이를 기억하려는 지역사회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섬의 가치는 아름다운 경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주민의 이동권과 생활물류, 안정적인 여객선 운항, 의료·교육 여건과 관광산업이 함께 유지돼야 섬은 지속 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남을 수 있다.
취재에 동행한 문화관광해설사는 “수도권을 비롯한 외지에서 금오도를 찾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며 “천혜의 해안 절경과 섬 주민의 삶이 함께 남아 있는 금오도를 꼭 찾아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수=해운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