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대학교 창립자 이시형 박사 제29주기 추도식 성료
해당 이시형 박사는 우리나라 정부 수립이전인 1945년도에 해운입국을 위해서는 해기사가 양성되어한다는 신념 하에서 한국해양대학을 창립하여 현재는 해기사 양성 전문 교육기관을 뛰어 넘어 세계적인 해양과 해운 전문의 특성화 종합대학으로 발전했다.
4월9일 해당 서거 29주년을 추도하여 한국해양대학교 본관 이시형 동상 앞에서 추도행사가 열렸다. 한국해양대학교 박한일 총장, 류길수 대학원장, 김명환 해사대학장 및 학처장과 학생 대표, 김성태 총동창회장을 대신하여 부산지회 박정우 지회장, 학생한국해기사협회 임재택 회장, 범우장학회 이종민 회장, 손태현 명예교수, 이준수 명예교수, 유족대표, 학생대표등 100여명이 참석하여 묵념 및 헌화, 창립자에 대한 약력소개, 총장의 추도사 등을 통하여 고인의 공적을 추모하고 영면을 기원했다.
박한일 총장은 추도사를 통하여 해당 이시형은 8.15 직후의 혼란기에 해운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국가 백년지대계로써 한국해양대학을 창립하였고, 초대, 제3대, 5대 및 7대 학장 등 을 역임하였으며 세 차례의 폐교위기를 극복하여 대학을 존속시켰음을 상기하면서. 우리 후학들도 해당의 숭고한 뜻을 이어 받아 한국해양대학의 발전을 위해 매진하자는 각오를 밝혔다.
한국해양대학 창립 초기, 졸업생들은 고난을 함께하는 가운데 해당 이시형의 해운입국정신에 감화되어 그 정신구현에 진력하였다. 첫째, 해운에 있어서의 주동적 역할을 들 수 있는데, 부존자원이 빈약한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높은 경제운용을 하게 되며, 무역은 거의 전적으로 해운에 의존하게 되는데, 해운에 있어서 주동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한국해양대학인 것이다.
둘째, 관련산업의 기동력적 역할을 들 수 있는데, 초창기의 조선,발전,원양수산업의 개척작 또는 개발자 역할을 한 것은 한국해양대학 출신 해기사들이었고, 이는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업적이다. 세째, 국가안보에 공헌을 들 수 있는데, 국내 유일의 예비사관학교로써, 8,000여명 이상의 해군예비장교를 배출하였다. 네째, 실기.실무와 이론.학술연구와의 괴리극복인데, 실기.실무교육기관이면서 이론.학술연구대학으로 성공한 유일한 예가 한국해양대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