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는 열렸지만 항로는 흔들린다…바브엘만데브 리스크 재부상
중동 전쟁 장기화로 수에즈 항로의 재불안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현재까지 수에즈운하 자체가 폐쇄됐거나 북부 홍해와 수에즈 접근 수역에서 상선 통항이 직접 중단된 것은 아니지만, 홍해 남단 바브엘만데브 해협 리스크가 재확산될 경우 수에즈 항로의 실질적 활용도가 다시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집트 수에즈운하청은 3월 3일 운하 통항이 양방향으로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고, 당시 하루 56척, 총 260만톤 규모의 선박이 운하를 통과했다고 설명했다. JMIC도 3월 24일 자문에서 북부 홍해와 걸프오브수에즈 접근 수역, 수에즈운하, 이집트 인접 해역에서 상선 관련 보안 사고나 운항 차질이 보고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장의 시선은 운하 본체보다 남쪽 관문으로 쏠리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머스크는 3월 1일 바브엘만데브 해협과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향후 트랜스수에즈 항해를 중단하고 희망봉 우회로로 돌렸다. 하팍로이드도 인도·중동·지중해를 잇는 IMX 서비스를 남아프리카 우회로로 전환했고, CMA CGM 역시 수에즈 운항을 멈추고 희망봉 경유로 바꿨다. MSC는 중동행 화물 예약을 중단하고 걸프 해역 선박들에 피항을 지시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수에즈 리스크가 단순한 “운하 폐쇄”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수에즈운하가 열려 있더라도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안전이 흔들리면 선사들은 결국 남하 우회를 택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운항일정 지연과 보험료·연료비 상승, 할증료 부과가 동시에 나타난다. 실제 로이터 보도에는 하팍로이드의 전쟁위험 할증료 적용과 CMA CGM의 긴급 분쟁 할증료 부과 조치가 함께 담겼다.
홍해 남단의 불안 요인도 다시 커지고 있다. AP는 예멘 후티 세력이 이번 중동 전쟁 국면에 본격 가세하면서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다시 겨냥할 가능성이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이 해협은 통상 세계 무역의 약 12%가 지나는 핵심 병목이다. 후티가 2023년 말 이후 이 일대 상선을 반복적으로 공격했던 전례까지 겹치며, 수에즈 항로 재불안 가능성은 단순한 가정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시장 변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미 홍해 항로는 완전한 회복과 거리가 멀다. 로이터는 3월 25일 분석 기사에서 서방의 홍해 항로 보호 작전이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도 선사들의 본격 복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같은 기사에 실린 데이터에 따르면 바브엘만데브와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일일 해상 물동량은 2023년 11월 후티 공격 이후 이전보다 약 60%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즉 이번 중동 전쟁은 회복되지 못한 홍해 항로에 또 한 번의 충격을 가하는 셈이다.
결국 현재 시점에서 “수에즈운하가 막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바브엘만데브 해협 긴장이 재차 고조되고 선사들의 우회 결정이 더 확산될 경우 수에즈 항로는 다시 “열려 있지만 쓰기 어려운 항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가 주목하는 것도 운하의 물리적 폐쇄 여부보다 남단 리스크가 아시아·유럽 항로 전체의 공급망 비용과 정시성 악화로 이어지느냐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