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협상 4대 쟁점 분야 ‘손익계산서’
협상시한 연장은 ‘실리’ 위한 ‘고투’의과정
60시간 연장협상의 결과 한국의 ‘판정 승’
한국과 미국 두나라 협상단이 협상시한을 60시간 연장하면서까지 피말리는 벼랑끝 승부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쇠고기를 비롯한 농산물, 자동차, 섬유 등 양국의 최대 쟁점 분야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이었다.
당초 일부 비판언론과 반대단체들은 터무니 없는 '퍼주기 협상론'을 거론하며 이들 분야의 타결전망에 관해 우리측의 대폭적 양보를 점쳤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드러난 협상결과는 정반대였다. 오히려 우리측 요구가 전폭적으로 반영돼 실익이 많은 성과가 대부분이었다. 결국 48시간, 아니 60시간의 연장 협상은 우리측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었고, 우리 협상단은 여기서 예상치 못한 성과를 일궈냈다. ‘졸속’이니, ‘퍼주기’니 하는 비판을 무색케 하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 자동차 : 우리측이 전면적 시장개방을 요구한 자동차 분야는 ‘3000cc 이하 승용차의 즉시 관세 철폐’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3000cc이하 차종의 자동차 수출액은 2005년 부품을 포함한 전체 대미 수출 100억 달러 가운데 65억 달러를 상회하는 우리의 주력 품목이다. 이는 곧 협정이 발효될 경우 미국시장에서 당장 판매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을 의미한다.
5년간 단계 철폐서 3000cc이하 수출 주력차종 즉시 무관세로
미국 측은 지난 1년여 협상 기간 내내 점진적 완화 입장을 좀처럼 굽히지 않았다. 서울의 고위급 회담에 들어서야 ‘승용차 5년간 단계적 철폐, 픽업트럭은 10년간 장기 철폐’ 양허안을 제시했다.(사진: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 차량 전용 선적부두와 야적장에 미국 등지로 수출될 차량들이 가득차 있다.)
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않자 승용차의 관세철폐 기간을 다시 3년으로 줄이는 추가 양허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반대론자들은 미국의 현지 생산이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3년간의 단계적 관세 철폐는 실익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비관적 예상은 빗나갔다. 물론 우리측이 목표한 모든 품목의 즉시 철폐에는 도달해지 못했지만, 끝까지 단계적 완화를 고집하던 미국의 대폭적인 양보를 받아냈다. 대신 우리측은 배기량 기준으로 유지되고 있는 자동차 세제개편 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 섬유 : 자동차와 함께 섬유는 우리 협상단이 끝까지 물러서지 않은 핵심쟁점이었다. 흑자폭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미국 시장의 진입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평균관세율 8.9%, 많게는 15%의 고관세를 완화하지 않고는 얻는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미국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의 ‘쌀’과 같이 섬유는 미국 입장에서 보호해야 할 민감 품목이기 때문이었다. 미국 협상단은 관세 철폐 요구는 버티면서, 원사기준(얀 포워드)을 고집하며 협상을 난항으로 끌고 갔다. 지루한 협상이 지속돼자 비판 언론은 역시 손해보는 장사라는 비관적으로 예측했다.
결과는 수입액의 61% 관세 즉시 철폐. 더불어 고집하던 원사기준도 일부 품목을 중심으로 양보를 받아냈다. 미국은 국내 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기반을, 우리는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진입장벽의 완화에서 절충점을 찾았다.
▲ 쇠고기 등 축산물 : 반면 미국 측이 집요하게 시장개방을 요구한 쇠고기는 15년간 단계적으로 철폐라는 ‘완충기간’과 세이프가드란 ‘안전장치’를 동시에 확보했다.
당초 미국 측의 요구는 완전한 관세철폐와 검역조건을 완화해 뼈있는 쇠고기의 즉각적인 수입이었다. 이에 대해 우리 협상단은 국민 건강을 고려해 검역문제는 양보가 불가할 뿐 아니라, 수입재개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결과를 보고서 판단할 문제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검역-집요한 설득, 개방유예-벼랑끝 버티기의 성과
그러나 미국은 전면적인 수입재개를 위해 ‘검역’ 문제를 압박 카드로 지속적으로 활용했다. 두 차례 고위급 협상을 거치는 과정에서 국제수역사무국의 ‘광우병 통제국 등급’ 판정을 기정사실화 하며, 뼈를 포함한 쇠고기의 전면 수입재개를 요구하기도 했다.
협상 막판에는 쇠고기를 ‘딜 브레이커’(협상타결을 좌우할 요인)로 내세워 압박수위를 더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협상단은 검역주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집요한 설득을 계속했고, 결국 미국측의 신뢰를 얻어 냈다.
검역 문제 집요한 설득의 결과라면 15년간의 장기관세 철폐와 세이프 가드 도입은 버티기의 결과였다. 미국 협상단은 최종 고위급 회담이 열릴 때 까지만 해도 40% 관세의 즉시 폐지를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협상단은 연장협상에 돌입하면서 까지 15년 장기 철폐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미국측의 양보를 얻어냈다.
그러나 비판 언론은 우리측의 양보를 예상했다. 일부에선 쌀과 빅딜을 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했다. 15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관세 철폐가 이뤄지고, 세이프가드가 도입될 경우 국내 쇠고기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다. 충분한 시간을 벌어 시장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대책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농산물 : 국내 시장에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됐던 농산물 분야의 협상결과도 합격점을 줄 만하다. 급작스런 개방으로 인한 시장충격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관세 철폐기간을 길게는 20년까지 확보했고, 세이프가드, 계절관세, 관세할당(TRQ)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보완했기 때문이다.
'쌀 거론하면 협상 없다'원칙론 관철
충분히 외투를 걸쳐, 찬바람에 감기가 걸리지 않도록 한 것과 같다. 특히 감귤농가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됐던 오렌지는 현행 50%의 관세율을 유지하면서, 감귤을 수확하지 않은 기간에 한해 7년간 단계적으로 관세를 철폐하는 방향으로 결론났다.
콩, 감자, 분유, 꿀 등은 현행 관세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고, 고추, 마늘, 양파 등 민감품목은 세이프가드, 관세할당(TRQ), 장기이행기간을 부여해 국내 생산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과의 경우 후지 품종은 20년 단계적 관세철폐와 세이프가드, 나머지 품종은 10년 단계적 철폐와, 10년 세이프가드로 결정됐다. 감자는 식용의 경우 현행관세를 유지하면서, 3000톤에서 매년 3% 증가시키고, 칩용의 경우 계절관세를 도입해 12월부터 4월까지는 즉시, 5월부터 11월까지는 15년간 적용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마지막 협상에서, 쌀 문제를 거론하며 우리측을 압박했던 미국이 쌀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못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측은 쌀은 협상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고, 양허대상으로 요구될 경우 ‘협상결렬’도 불사한다는 원칙론으로 대응해 쌀을 지켜냈다.
▲ 개성공단 : 개성공단 문제의 진전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큰 선물이다. 협상 마지막까지 ‘빌트 인’(built-in, 협상타결 뒤 재논의)으로 결론날 것으로 보였으나, 우리측의 끈질긴 요구 끝에 ‘역외 가공 방식’에 극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미국의 남북 경협 지지·지원 평가
미국 측은 협상기간 내내 개성공단에 대해 회의적 반응으로 일관했다. 우리측은 ‘역외가공무역’ 사례를 들어 한국산 인정을 요구했지만, 그 때마다 ‘논의대상이 아니다’고 퇴짜를 놓았다.
특히 북핵 문제와 맞물려 인정여부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협상이 진전되면서 빌트인의 가능성을 제시했고, 최종 결론도 그렇게 나는 것으로 보였다. 언론도 더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전후사정을 놓고 보면 개성공단을 포함한 남북경협지역의 생산제품에 대해 한국산으로 인정하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합의는 뜻밖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한반도 비핵화의 진전 등 일정요건을 감안해서다. 이는 곧 미국이 남북의 경제협력 사업을 앞으로 지지·지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일부 언론과 빈대진영의 우려섞인 비관적 협상 전망은 모두 빗나갔다. 반대론자들의 섣부른 양보 전망은 우리측이 실리를 톡톡히 챙기는 방향에서 결론났다.
일부에서 협상결렬의 비관적 해석을 내놓는 동안 우리 협상단은 반드시 얻어야 할 것은 얻어내고,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원칙'과 ‘데드라인’을 정해 놓고 조금씩 미국의 양보를 얻어냈다. 물론 통상협상에는 늘 상대가 있고 이익의 균형이 중요한 것이지만 이번 한미FTA 협상은 '퍼주기'가 아니라 완벽한 ‘판정승’ 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