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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북한산 숲 속을 거닐며=신 관 섭 국립공원 관리공단 자문위원

오늘도 북한산 숲길을 걷는다. 어느덧 계절의 여왕인 5월에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며 숲길을 걷는 그 여유로움은 나만의 특권인양 흐뭇하기 그지없다. 젊은 시절에는 한 해에 한두 번 잘해야 서너 번 북한산에 올랐지만, 요즈음에는 나의 심신 단련장인 동시에 사교의 장이 되어 북한산에 오르는 것이 내 생활 일부가 되었다. 매주 토요일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에 오르고, 또 일요일에도 틈만 나면 오르다 보니 어느덧 300여 회에 이르게 되었다.

  

어떤 친구는 이 산 저 산 골고루 다니지 왜 북한산이냐고 묻기도 하지만 대답은 물론 북한산이 좋아서다. 예로부터 중국에는 동악-산동성의 태산(泰山), 서악-성서성의 화산(華山), 남악-호남성의 형산(衡山), 북악-산서성의 항산(恒山), 중악-하남성의 숭산(嵩山)을 5대 명산으로 일컬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동악-금강산(金剛山), 서악-묘향산(妙香山), 남악-지리산(智異山), 북악-백두산(白頭山), 중악-북한산(北漢山)을 5대 명산으로 여겼었다.


북한산은 우리나라의 5대 명산 중 하나인 동시에 역사유적의 보고이기도 하다. 수많은 불교유적과 산성에 관련된 유적이 온 산을 덮고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며 또한 북한산은 풍수지리 전문가에 의하면 지기가 충만한 산이라 한다. 이처럼 대단한 산을 버스표 한 장으로 30분 아니면 1시간 내에 다다를 수 있으니 더 부족함이 무엇이 있겠는가.

 

친구들은 나를 보고 북한산 등반이 주업이고 주중에 하는 일은 부업이라고 하기도 한다. 북한산을 1~2천 번 이상 오른 마니아 앞에서는 명함을 못 내밀 실력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북한산 전체의 윤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능선과 계곡, 봉우리와 바위, 폭포와 샘, 산성과 사찰, 나무와 풀 등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 각각의 이름까지도 관심이 간다. 절묘하게 잘 지어진 이름이 있는가 하면, ‘이건 왜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이건 아닐 텐데’ 의심이 가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정말로 잘못 지어진 이름이라는 생각도 든다. 오늘은 이 이름들에 대하여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북한산에는 봉우리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 수많은 봉우리에 모두 다 이름이 있다. 봉우리마다 이름을 붙여 주신 우리 선조의 산 사랑에 머리가 숙여진다. 인수봉을 필두로 하여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용암봉, 일출봉, 월출봉, 기룡봉, 반룡봉, 시단봉, 덕장봉, 복덕봉, 석가봉, 성덕봉, 화룡봉, 잠룡봉, 보현봉, 문수봉 등등 이루 다 열거하기도 힘들다. 선조께서 일일이 정성스레 지어주신 봉우리의 이름을 대다수 우리 후손들은 큰 봉우리 몇 개의 이름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무심하게 산에만 오르고 있다.

 

북한산은 예부터 오랫동안 삼각산으로 불려오다가 근자에 와서 북한산으로 불리고 있으며 많은 사람은 북한산의 주봉을 백운대로 알고 있지만 삼각산을 대표하는 세 봉우리 중 인수봉만 ‘봉’으로 하고 나머지는 한 격이 낮은 ‘대’로 이름하였듯이 인수봉이 주봉이다.

 

백운대에서 염초봉, 원효봉에 이르는 원효능선 북쪽에 상장봉이 있는데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하여 역적봉으로도 불렸다. 산봉우리가 무슨 역심을 품었으랴만 우리 선조의 북쪽에 대한 사무친 원한을 읽을 수 있다. 문수봉 북쪽으로 의상능선이 이어지는데 나한봉, 나월봉이 있다. 김윤우 편저, ‘북한산 역사지리’나 민경길 저, ‘북한산 역사지리잡고’에 의하면 그 중간에 칠성봉과 상원봉이 나오는데 고증을 거처 원래의 이름을 찾았으면 한다.

 

보현봉은 규봉(窺峯)이라고도 한다. 규봉은 성 밖에서 성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봉우리를 이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북한산 마니아들에 의하면 북한산 봉우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가 보현봉 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한다. 하지만 출입통제가 계속되어 아쉽기만하다.

 

보현봉 남쪽에 형제봉이 있는데 정상부에 두 봉우리가 솟아있어 마치 형제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형제봉을 각각 부르려면 형봉, 아우봉하면 될 텐데 안내판에는 큰형제봉, 작은형제봉이라고 되어있다. 큰형제, 작은형제 이형제봉이라는 말인가.

 

  육모정 고개에서 영봉에 이르는 능선이 우이능선이고, 이 우이능선 북쪽 그러니까 도봉산 남쪽에 우이남능선이 있다. 이는 우이능선 북쪽에 있으니까 우이북능선이라야 옳다. 굳이 남능선이라고 하고 싶으면 우이암 남쪽에 있으니까 우이암남능선이라고 하면 말이 된다. 도봉산의 주봉인 자운봉의 북쪽 능선이 포대능선이다.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신선대와 같이 아름다운 봉우리로 향하는 능선의 이름이 왜 하필 살생과 파괴를 의미하는 포대능선이란 말인가. 6∙25 전란 시 퇴로를 차단당한 인민군을 타격하기 위하여 잠시 설치되었던 발칸포진지에서 유래한 이름인데 자운능선, 신선능선이나 만장능선이라 하면 얼마나 산세와 어울리는 아름다운 이름이 될까. 향로봉 북쪽에서 기자촌에 이르는 짧지 않은 능선이 있는데 등산객의 발길이 많은 능선이다. 이 능선에 아직 이름이 없는데 기자능선이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계곡 또한 수없이 많은데 계곡의 이름은 거의 다 무난한 것 같다. 궁중의 무수리들이 빨래를 하며 바깥세상의 맛도 보았다는 빨래골, 무수리와 내시의 무덤이 많은 무수골, 문사동이란 암각이 있는 문사동계곡 등은 일반 등산객들이 그 뜻을 잘 모르는 이름이다. 진달래능선과 나란히 있는 소귀(牛耳)천계곡에는 누가 세웠는지 소귀(素貴)라는 돌로 된 표식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계곡에는 등산객의 편리를 도모하는 수많은 다리가 놓여있다. 징검다리, 나무다리, 돌다리, 콘크리트다리, 철제다리, 와이어로프다리 등 그 재질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예산을 배정하여 모양도 아름답고 튼튼한 다리로 다시 놓고 있어 흐뭇하기만 하다. 그리고 각각의 다리에는 이름이 지어져 이름표가 붙어있다.

 

새로운 다리를 놓는 데에는 비용이 드니까 시간을 두고 점차 해야겠지만 이름을 짓는 데에는 큰 비용이 들 리 없으니 조금만 신경을 쓰면 좋은 이름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리가 많이 있기로는 단연 구기계곡이다. 구기분소에서부터 상류로 10여 개의 다리가 있다. 그 이름을 한번 살펴보면 만남교, 우정교, 버들치교, 박새교, 적송교, 귀룽교, 돌단풍교, 철죽교, 국수교, 고광교 등 이름도 다양하다. 하나하나의 이름은 무난해 보이지만 전체를 연결해 보면 산만하기만 하다. (사진:향로봉을 등정하면서)

 

자연스레 연결되는 다리 이름을 지을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정릉1교, 2교나 송추1교, 2교, 3교 또한 성의가 부족한 이름이라 생각된다. 우이동 고향산천에서 좌측으로 올라가는 소귀천계곡 입구에는 옥류교가 놓여있다. 다리 모양도 아담하고 이름 또한 멋지며 돌난간에 음각으로 정성스럽게 이름을 새겨 놓았다. 운치 있는 이름이다.

 

원도봉계곡 입구에서 망월사에 이르는 계곡길에 몇 개의 다리가 있는데 중생교, 천중교, 극락교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불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고 다리 이름도 돌기둥에 정성스럽게 음각하고 뒷면에는 불경 한 구절도 새겨져 있다. 이 또한 멋지다.

 

대서문을 지나 북한산성계곡에 이르면 새마을교가 있다. 웬 산중에 새마을교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에 주민의 민원을 해결하는 사업으로 진입로를 콘크리트로 포장하고 다리도 번듯하게 놓은 사연에는 고개가 끄덕여 지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닌 것 같다. 마침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원주민을 이주시키고 그 일대를 정비할 계획이 수립되어 진행 중이라 하니 차제에 다리도 새로 멋지게 놓고 이에 어울리는 이름을 새로 지었으면 한다.

 

북한산에는 수많은 샘이 있어 등산객의 목을 추겨 주기도 하고 원기를 돋아 주기도 하는데 고도가 높은 산 정상부에 있으면서도 수량이 풍부하여 넉넉한 샘이 있는가 하면 산 아래에 있으면서 물줄기가 말라가는 샘도 있고 또 물줄기의 변화에 의해 새로 형성되는 샘이 있기도 하다. 샘이 많이 있기로는 단연 칼바위능선에서 진달래능선 사이인 수유, 우이지구 일대이다. 여기엔 골짜기도 많고 또 골짜기 마다 샘도 많다.

 

샘들의 이름을 보면 00샘, 00천, 00수, 00정, 00약수 등 다양하나 그 이름에 따라 물맛이나 효능에는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몇몇 샘은 00정수나 00천수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샘에서 떠올린 물은 00정수니 00천수라 할 수 있어도 샘 이름의 표기는 아니지 않은가. 북한산의 샘 중 특이하기로는 무너미샘이 있다. 바위굴 속에서 흘러나오는 샘인데 그 물맛은 별로 이지만 볼거리는 되리라 생각된다. 정규 등산코스가 아니어서 일반인의 발길은 뜸하다.

 

마지막으로 나무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북한산에는 수많은 나무가 있지만 그중에서 특히 대접을 받는 보호수가 있다. 보호수가 많이 있기로는 진관사 일대이다. 느티나무가 여러 그루 있고 은행나무도 있다. 북한산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나무는 방학동 연산군 묘소 앞의 은행나무인데 800살이 넘었다. 그런데 아파트에 둘러 쌓여있어 불쌍하기만 하다. 태고사의 귀룽나무도 희귀목이다.

 

안내판에는 매년 3월 20일경에 꽃이 핀다고 되어있어 여러 번 찾아갔으나 매번 허탕을 하였다. 올해에는 꼭 꽃을 보려고 몇 번 찾아간 끝에 지난 5월 초순에 꽃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안내판의 3월 20일은 음력이란다. 아예 음력이라고 표기를 하던지, 안내판을 쓴 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참으로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북한산장옹달샘 옆에는 북한산에서 드물게 보이는 아름드리 중국굴피나무가 서 있는데 안내판 하나 세웠으면 좋겠다.

 

보호수의 안내판에는 나무의 나이, 높이, 굵기와 보호책임자 등이 쓰여있다. 나무도 매년 한 살씩 나이를 먹고 자라는데 어떤 안내판은 작성한 지가 10년도 넘어 보인다. 안내판에 쓴 나이를 매년 고치지 않을 바에야 나이 대신 예상 출생 연도를 표기하는 방안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처럼 보호수 대부분은 크게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서이다. 보호수가 고마워하도록 실질적인 보호가 요구된다.

 

이렇게 산 속에 숨어있는 여러 이름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즐거움이 넘치는데, 어떤 이는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느냐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산이 거기 있으니까 올라간다고 싱겁게 이야기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준비하고 오르는 고통보다도 올라가서의 기쁨이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서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능선과 바위 그리고 골짜기를 주로 보고 다녔지만 이제부터는 산의 품속에 있는 나무와 풀과 꽃을 보고 아끼며 산행을 해야겠다. 이 땅의 나무 한 구루, 풀 한 포기 얼마나 소중한 우리 모두의 자연유산인가?

 

아름다운 숲을 가꾸어 우리의 후손들이 숲 사랑 정신을 이어가도록 노력하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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