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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조달물품도 ‘품질’로 승부한다= 김성진 조달청장

 바야흐로 고객만족 시대다. 민간기업은 특히 앞 다투어 고객만족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국내 모 항공사가 최근 국내외 유명 외식업체와 제휴를 통해 장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고품격 기내식을 공급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고객들의 취향에 맞게 메뉴를 고급화하고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승객들을 위해 메뉴별로 다양한 열량정보를 제공하는 칼로리 정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단순히 승객들을 하늘길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날라주는 항공사의 고유업무영역을 뛰어넘어 장거리 여행의 무료함을 고급 식사로 달래주려는 고객만족 실천사례다.

  

또 굴지의 한 패스트푸드 업체도 배달된 음식이 식어 소비자들이 불만족스러워하면 배달금액 전액을 환불해주는 ‘핫 앤 온 타임’ (Hot & On time)캠페인으로 고객들을 유인하고 있다. 제 맛을 내기 위해서는 온도유지가 생명인 음식을 오븐에서 갓 구워 그대로 가정에 빠르게 배달하는 고객만족 프로그램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영업전략으로 판단된다.


민간기업, 생존 차원의 고객만족 아이디어 봇물

  

지난 7월27일 조달청장으로 부임한 후 소속 품질관리단의 업무보고를 받기 전까지 만 해도 솔직히 정부조달에 있어서 조달청의 법률적 역할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었다. 정부조달계약에 있어 조달청이 수요기관과 물자공급업체의 중개자라고 생각했지 계약의 직접 당사자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런데 조달계약상 조달업체에 대하여 수요기관이 아닌 조달청이 계약의 직접 당사자로 되어 있었다. 계약서상 권리의무의 주체로서 조달청이 명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달청의 지위와 역할은 무엇일까? 조달청은 수요기관을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물자구매 계약을 체결하는 일종의 위탁매수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조달청은 위탁자인 수요기관을 위해 매입행위를 하는 것이고 이에 대하여 대가인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따라서 조달청은 얼마나 위탁자 즉 수요기관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수요기관은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전문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하여 조사한 ‘조달물자 고객만족도’의 결과는 해마다 지속적으로 나아지고는 있으나 아직도 다소 미흡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달물품에 대한 평균만족도가 77.4점으로 크게 높은 수준이 아니어서 그 원인을 따져본 결과 품질만족도가 매우 낮은 65.7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즉 조달품질에 대한 불만이 만족도를 낮게 하는 주된 이유로 분석된 것이다.

  

수요기관의 품질만족도가 왜 이렇게 낮게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공공조달에서의 계약제도가 지나치게 가격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것에 크게 기인한다고 본다. 납품업체 선정에 있어 가격이 거의 전부의 결정변수라고 할 정도이다. 정량화가 어려운 질적 항목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기 일쑤다.

  

또 수요기관의 품질에 대한 낮은 만족도에 대한 책임에서 조달청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본다. 납품검사 같은 품질관리기능을 전문성이 없는 수요기관에 미루어 버림으로써 조달물품의 품질이 제대로 체크되는 시스템이 없게 한 것은 조달청의 일차적 책임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수수료만 챙기고 품질에 대한 책임은 수요기관에 떠넘기고 있다”고 수요기관이 비난해도 “일손이 너무 모자라서 어쩔 수 없다”는 항변 외에는 뚜렷이 할 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산업화시대의 가격위주 조달정책으론 고객만족 어려워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능률’이 중시됐던 지난 산업화 시대에서는 도로, 항만 등 산업인프라나 공공건축물을 건설하거나 물품을 구매할 때 가격위주의 조달정책이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정책이었을 수도 있다. 예산절감이 중요한 고려 요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제 가격 위주의 조달정책만으로는 높아진 고객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정부조직은 대부분 법률에 의하여 창설된다. 따라서 외견상 정부조직의 존립 근거는 법률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느 범위까지 정부가 할 것이냐는 것은 나라마다 차이가 크다. 교도소까지 민간에 위탁하여 운영하는 나라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볼 때 조달청도 조달사업법 등 근거 법률을 갖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공공조달시장에서 전문중앙조달기관으로서의 존재이유와 가치를 소비자인 수요기관과 공급자인 조달업체로부터 모두 인정받아야 한다.

  

수요기관에게는 조달청이 믿을 수 있는 양질의 물자와 서비스를 좋은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믿음을 심어 주어야 한다. 납품업체에게는 조달청이 물품이나 용역에 대하여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곳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조달청이 고객만족을 실천하고 수요기관과 납품업체 모두로부터 인정받고 고객만족을 주는 기관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조달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 우선 현행 가격위주의 조달정책을 가격과 품질을 동시에 균형 있게 중시하는 방향으로 물꼬를 돌리는 방향전환이 시급하다고 본다.


품질중시하는 방향으로 물꼬 틀어야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 시장에서 거래되는 제품은 시장에서 평가받는 것이 원칙이다. 가격, 품질, AS 등 제품을 둘러싼 모든 것은 시장에서 수요자에 의하여 점수가 매겨지고 이에 대하여 공급자가 수익의 극대화를 위하여 대응행동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수요자와 공급자의 행동을 통하여 경제전체의 효율과 후생이 극대화된다고 하는 것이 시장경제 이론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것은 여러 가지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또 한가지 시장은 냉혹하다는 것이다. 개별기업의 특수한 사정을 이유로 한 예외가 허용되지 않는다. 인정도 사정도 없는 냉혹함이 시장의 특성이다.

시장경쟁에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불리한 지위에 설 경우가 많다. 예컨대 어느 제품의 품질에 대한 정보가 완전치 못할 경우 소비자들은 당해 제품을 생산한 기업의 이미지로 그 제품의 품질을 평가해 버리는 경향이 많다.

  

따라서 시장에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 조달청은 다각적인 중소기업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공공조달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중소기업 비중이 크다. 지난해의 경우 공공조달시장의 내자구매에서 중소기업 비중이 계약자수 기준 96%, 금액기준 71%에 달했다. 그런데 중소기업의 경우 규모가 영세하고 회사 자체의 품질관리마인드와 기능이 극히 취약하여 품질의 신뢰성이 낮은 것이 실상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중소기업 제품이 조달물자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점과 조달물품의 구성으로 보더라도 규격화되어 대량으로 유통되는 TV, 냉장고 등 상용품은 29%에 불과하고 나머지 71%는 전기설비, 하수처리장비 등 주문제작품이어서 규격화제품에 비하여 품질의 비교 평가가 쉽지 않은 품목이 대부분임을 고려하면 조달물품의 품질을 시장에만 맡기기가 어려움은 분명하다.


조달물품 ‘품질’ 시장에만 맡기기 어려워

  

이러한 여러 가지 제약 하에서 정부조달물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달청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조달물품의 품질관리도 원칙적으로는 시장에 맡기는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조달청 품질관리단이 시장기능을 뒷받침하고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본다.

  

품질관리단은 우선 업체 스스로 품질관리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그 이행실태를 점검 · 확인하고 독려해야 할 것이다. 업체의 자체 품질관리 능력의 수준이 입찰에서 중요한 평가요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품질관리 방향은 공공조달환경이 다르기는 하지만 계약 시부터 품질문제를 철저하게 처리하는 미국의 계약관리관제도, 캐나다의 업체자체검사, 영국의 입찰시 품질시스템 평가 등과 같은 선진국 조달기관의 품질관리 정책과도 방향을 같이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외부 공인 시험기관의 검사전문성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우선 그 동안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어 왔던 외주검사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계획이다.
과거 외주 검사 시 계약자가 샘플을 검사기관에 제출하는 과정에서 실제 납품할 물품의 샘플이 아닌 것을 제출하고 이것을 그대로 시험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또 몇 년 전 문제가 됐던 불량 방독면 사건은 국내 외부 공인 시험기관에는 시설장비가 없고 당해 제조업체만 유일하게 장비를 갖추고 있다는 이유로 제조업체 공장에서 당해 업체가 소유한 장비로 그것도 합리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로 검사가 이루어짐으로써 불량방독면이 우수한 방독면으로 둔갑하여 사회문제로 불거진 것이었다.

  

이와 같은 엉터리 검사가 다시는 불가능하도록 앞으로 외주검사 관련 업무처리기준을 제정해 조달물품 시험 및 검사의 객관성을 철저히 확보하도록 할 것이다.


또 산업기술시험원 등 19개 공인 시험기관과 MOU를 체결하여 외부의 전문검사 기능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품질관리단의 턱없이 부족한 검사기능을 보충할 계획이다.


“만족하지 않으면 수수료 안받아” (No satisfaction, No fee)

  

현행 품질관리단이 수행하고 있는 가구, 섬유 등 단순제품 위주의 자체 검사품목은 점차적으로 국내 공인시험기관에서 검사가 불가능하거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 등 사회적 영향이 큰 물품을 중심으로 대체 조정해 나갈 것이다.

  

이와 함께 품질관리에 대한 업체의 책임성을 대폭 강화 할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업체의 자체 품질관리시스템을 강화하도록 함은 물론 납품된 제품의 품질이 이후의 입찰에 반영되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불량품을 납품한 업체는 그 정도에 따라 정부조달시장에서 퇴출시키거나 또는 입찰에서 상응하는 불이익을 받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불량품 납품사실을 수요기관 등 많은 시장관계자에게 자동공개 되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하여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KONEPS)에 ‘불량품신고센터’를 개설 운영할 것이다.

  

이제 자율조달시대로 이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조달청 스스로 조달물품의 품질제고를 위한 획기적 노력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소비자가 만족하지 않으면 물건값을 돌려주는 캠페인을 하는 기업이 있는 것처럼 조달청도 수요기관이 조달물자의 품질에 만족하지 않으면 수수료를 돌려주겠다는 ‘No satisfaction, No fee’의 캠페인을 펼칠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일까. 아니 그러한 캠페인을 펼쳐야만 하는 날은 언제쯤일까. 그리 멀지 않은 장래의 일일 것이다. 미리미리 준비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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