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놀란 ‘민관군 협력’ 오염 해안 응급방제 70%
국제방제전문가 자원봉사자 민간 협력 잘 이뤄졌다
2개월 걸릴 작업을 불과 1주일 만에 해냈다 반응 등
봉사방제인력의 참여 잇달아 방제작업 가속도 붙어
태안의방제 다른 나라서 유례 찾아보기 어려울정도
국내전문단 등 현장조사로 체계적 생태복원 수립을
시커먼 기름으로 뒤덮여 흉물스럽던 모래사장이 마침내 은빛 속살을 되찾고 잇는 만리포 해수욕장의 모습을 보는 순간, 실의에 빠진 피해주민들의 아픔을 같이하겠다는 봉사자등의 인간승리 일면을 보는 뿌듯함 그것이었다.
검은 오일막이 휘감았던 바다도 쪽빛 물결로 돌아왔고, 끈끈한 기름덩어리 파도도 하얀 물보라를 되찾아 맑은바다물의 파도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10여년 전 일본에서 가장 큰 피해가 났던 유조선 ‘나홋카 호’의 정유 유출사고와 비교하면 (유출량이)1.7배에 해당하는 데도 굉장히 빨리 제거가 돼있어 놀랐다.” (일본 방제전문가팀 요덴유키오(余田幸夫)외무성 북동아시아 조정관)
17일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 오염 사고 현장을 방문한 일본 해상보안청 및 해상재해방지센터 소속 전문가 등 6명으로 구성된 일본 긴급지원팀은 천수만 인근 영목항 등을 둘러본 뒤 “해경과 자원봉사자 등 민간과의 협력이 잘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고 이 같이 말했다.
일본 긴급지원팀을 이끌고 있는 요덴 유키오 외무성 북동아시아 조정관은 특히 “1~2개월 정도 걸려서 할 수 있는 일을 불과 1주일여 만에 해낸 것 같다”며 “자원봉사자들이 방제에 큰 힘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 러한 결실은 기름띠의 밀물에 필사적으로 맞선 인간띠의 승리다. 유조선 충돌 사고로 태안반도에 검은 재난이 덮친지 13일째. 사상 최악의 해양오염사고를 입은 충남 태안 앞바다가 빠르게 제모습을 되찾고 있는 것이다. 14일 아침 방제용 항공기에서 촬영한 만리포 앞바다와 해변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만리포 해수욕장 모래사장은 상처 부위에 새 살이 돋아나듯 예전의 깨끗하고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냈다. 길게 펼쳐진 해변 백사장이 화창한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아직 검은 기름띠와 찌꺼기들이 남아있는 해안이 많지만 만리포 만큼은 사고 당시의 흉물스럽던 모습 대신 대는 파도도 푸르름을 되찾았고 코를 찔렀던 기름 냄새도 거의 사라졌다. 초기 백사장과 갯벌을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었던 기름띠들은 민관군의 총력 방제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의 땀방울과 정성어린 손놀림으로 하나둘 치워졌다.
인근 모항해수욕장 등 대다수 오염지역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제모습을 되찾고 있다. 일일이 자갈과 바위를 닦고 끝도 없이 밀려드는 기름을 묵묵히 한 삽 두 삽 퍼낸 결과다.
하지만 천혜의 관광지를 되찾기에는 아직 해야할 일이 많다. 사람의 손길이 미처 미치지 못한 암벽과 갯바위, 모퉁이 해변 곳곳에는 여전히 해상으로부터 밀려온 기름띠들이 남아있다.
이들지역은 군과 전문방제업체가 투입되고 있지만 일손이 절대 부족하다. 어민들이 미처 접근하지 못한 갯벌에도 군데군데 엷은 기름막들이 떠다닌다. 그래도 민관군이 총동원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방위 지원체계를 갖추고, 만사를 제쳐놓고 전국에서 달려온 수만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연일 기름을 제거하고 있는 만큼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반드시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요덴 조정관은 “원유 유출 사고 후 딱딱해지는 기름 덩어리들은 일본 원유 유출 사고에서도 발생했었다”며 “일본 후쿠티 마을에서 발생한 중유 유출 사고에서도 원유 찌꺼기들이 발생했고 한국과 같은 같은 방법으로 수거했었다”고 밝혔다.
지난 1997년 1월2일 일본 후쿠이(福井)현 미쿠니(三國)정 앞바다에서 발생한 러시아 선적 나홋카 호 기름 유출 사고는 유조선이 폭풍으로 두동강 나면서 중유 6240여㎘가 유출됐으나 일본 전역에서 밀려든 30여만명의 자원봉사자들로 기름 제거에 성공하면서 ‘30만명의 기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13일째인 19일, 민·관·군 총력 방제와 자원봉사 물결이 이어지면서 해안가의 응급 방제율은 모래해변을 중심으로 70%를 넘어섰으며 해상도 일부 타르 덩어리만 남아 응급방제가 거의 완료되는 등 빠른 진척을 보이고 있다.
사고 발생 당시 모항 앞에서 만대까지 40㎞의 해안가에 밀려왔던 검은 찌꺼기는 10일이 지나면서 상당부분 수거돼 모래해안 16km의 경우 거의 기름띠 제거가 완료됐으며, 암벽구간에만 기름찌꺼기가 산발적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사람과 장비의 접근이 어려워 아직 기름이 남아있는 가의도~모항, 정자두 해안 등 5km 지역에는 군 병력과 장제전문 업체들이 집중 투입돼 방제작업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타르 덩어리의 확산세와 확산량도 급속히 약화됐으며, 천수만 입구의 엷은 유막도 경비정과 방제정을 동원한 막바지 방제작업으로 거의 없어져 오염 물질의 천수만 유입가능성도 매우 낮아졌다.
외국 전문가들은 태안의 빠른 방제속도를 보고 “기적을 일궈내고 있다”며 놀라고 있다. 기름 방제 현장을 찾은 유엔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스페인·일본·싱가포르·미국 등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은 “불과 1주일여 만에 이렇게 빨리 기름을 제거하다니 놀랍다”고 입을 모았다.
14일부터 현장 조사와 사고수습 지원을 하고 있는 미국 연안경비대(USCG) 소속 방제전문가와 미국 해양대기청(NOAA) 해양생태계 연구원으로 구성된 미 방제실무팀은 “짧은 시간에 해안 부착유를 제거한 것은 매우 놀랍다(incredible)”고 했다.
지난 15일 태안 앞바다를 찾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국립대 루이스 램코프 박사 등 스페인 해양생태학 전문가들은 현장을 둘러본 소감을 묻는 질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오염원이 제거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며,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고 감탄했다.
16일부터 사고 피해지역을 살펴보고 있는 유엔환경기구(UNEP), 유럽공동체(EU), 유엔개발계획(UNDP) 등 국제기구 공동조사단도 “한국정부가 초동조치를 신속히 하고 관계기관, 지방정부, 군당국, 시민단체, 자원봉사자 등이 체계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제기구 조사단은 “원유유출사고 이후 우리 정부와 국민의 조치와 대응이 매우 적절하고, 즉각적이며,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하고 “현장상황을 봤을때 모든 상황들은 전문적으로 대응이 잘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처리제의 사용이나 타르 덩어리의 유해성 여부 등에 대해서도 블라디미르 사하로프 단장은 “국제적 기준에 따라 유처리제를 정상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고, “바다에 떠 다니고 있는 오일 타르의 경우 일반적으로 막 쏟아져 나온 원유보다 유해성이 훨씬 적은 것”이라며 “사고 이후 한국 정부의 대응책이 타당했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국립대의 루이스 램코프 박사도 “타르 덩어리는 기름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으로 일단 독성이 많이 제거된 상태이기 때문에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미관상의 문제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수거가 쉬운 장점도 있다”고 강조했다.
외국 방제 전문가들과 생태학자들은 철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한 지속적인 방제와 체계적인 생태계 복원 계획 수립을 주문했다.
미국 해양대기청 에드 레빈 연구원은 “기름이 안 보일 정도로 줄었다고 방제 작업을 멈춰서는 안 되며 진짜 중요하고 힘든 방제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고, 스페인 바르셀로나 국립대의 루이스 램코프 박사는 “눈에 보이는 기름 제거에 덧붙여 생태계에 미치는 피해실태를 분석하고 체계적으로 이를 복원하는데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엔 등 국제기구 조사단은 “생태계 복원은 오랜시간이 요구된다”며 “긴급 상황의 효율적 관리, 대응, 처리체계와 중장기 환경복원방안을 포함하여 종합적인 방안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제기구 공동조사단은 16일부터 22일까지 만리포 해변 모래사장은 물론 주요 피해오염지역을 손으로 파보며 방제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태안 앞바다 기름 유류사고로 인한 해양 및 연안환경 피해를 과학적으로 조사하고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를 총망라한 유류오염 사고 영향 조사 및 평가를 위한 전문단을 구성, 환경영향 조사를 하고 생태계 복원 장기계획을 마련키로 했다.
해양연구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국내전문단은 미국 해안경비대(USCG) 소속 오염방제전문가팀과 유럽연합(EU)과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환경계획(UNEP) 등 국제기구 공동조사단 등과의 긴밀한 협조체제를 통해 태안 유류사고 환경영향 조사 및 생태계복원 장기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