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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의 운명도 한 사람 손에 달렸었다

정유섭 국립해양조사원장

20세기 초 세계 최대의 여객선이었던 타이타닉호는 첫 번째 항해에서 침몰한 그 비극적 운명 때문에 많은 이야기꺼리를 남겼고 명작의 반열에 오른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선박의 안전기준과 설비기준이 강화되는 계기가 됐고, 국제해사기구 설립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타이타닉호에 승선했던 2200여명의 승객과 승무원중 무려 1500명 이상의 고귀한 생명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대신 후세에는 그들이 남긴 안타까운 사연들만 전해 내려오고 있다.

  

역사상 주요 사건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타이타닉 호의 경우에도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사람(통신기사) 하나만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더라면  승무원과 승객 대부분이 생명을 잃지 않고 살아 남았을 것이다.

  

타이타닉호가 빙산과 부딪히면서 선체가 찢어져 침수되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얘기다. 그러나 빙산과 충돌한 후 침몰하기까지는 두시간 반이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타이타닉호의 경우 당시 안전규정상 승객 절반만 태울 수 있는 구명보트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승객들을 전부 구조하기 위해서는 침몰 전에 인근에 있는 다른 선박이 구조신호를 받고 빨리 와주는 길 뿐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구조 선박은 4시간 만에 도착했고, 그동안 차가운 바닷물에 체온을 빼앗긴 승무원과 승객 대부분이 사망하고 말았다.

  

지난 1912년 당시 통신수단은 모스부호를 사용하는 무전기였다. 수많은 타이타닉호 승객들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즐거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보 송신을 통신사들에게 요구했다. 통신기사들은 돈 버는 재미에 이런 안부전보 송신에 몰두해 있었다.

  

인근을 항해하던 캘리포니아호 통신기사는 타이타닉호에 빙산을 조심하라는 무선통신을 두번 보냈다. 안부 전보 송신때문에 바빴던 타이타닉호 통신사는 “바빠 죽겠는데 성가시게 하지 마라”고 답신을 보냈고, 이에 열 받은 캘리포니아 통신사는 통신기를 끈 뒤 잠을 자러 가버리면서 엄청난 사건은 시작됐다. 그 직후 타이타닉호는 빙산과 충돌한 것이다.

  

그때서야 타이타닉호에선 계속 조난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불과 한시간 거리에 있었던 캘리포니아호는 통신기사의 업무태만으로 이 조난신호를 수신할 수 없었다.

  

결국 4시간 거리에 있던 카르파티아호가 조난신호를 수신한 뒤 때늦은 구조를 하러 달려왔다. 물론 캘리포니아호가 구조하러 오지 않았다고 해서 어떤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러나 통신기사가 제자리에서 조난신호를 수신했더라면 타이타닉호 승객들의 운명은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들은 우리 사회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일정부분 기여를 하고 있다.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의 태만과 무심함이 대한민국호에 치명적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제방감시원이 제방을 돌보지 않으면 제방이 무너지고, 판사가 재판과 관련된 특정인에게 뇌물을 받으면 재판의 신뢰성를 잃게 된다. 공사감독이 감독을 소홀히 하면 다리가 무너지며, 기관사가 주변을 살피지 않고 생각없이 전동차의 문을 닫아버리면 수백명이 불속에서 목숨을 잃게 되기도 한다.

  

한 통신기사의 업무 태만과 게으름으로 타이타닉호에 승선했던 수많은 승무원과 승객이 수장되었던 사건과 유사한 일이 지금도 어디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공공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하나 행동하나를 신중히 하고 소홀한 것은 없는지 항상 돌아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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