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성 일(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어느덧 2009년도 저물어간다. 2000이라는 숫자에 감동하며 뉴밀레니엄의 탄생을 축하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앞으로 며칠만 있으면 2010년이니 참 세월이 빠르기는 하다. 지난 10년동안 우리는 잘 살아왔는가. 점검과 반성의 시간을 가질 때다.
어느 시대나 그렇듯 지난 10년의 변화 또한 양지와 음지의 모습을 같이 보여준다. 일인당 GDP는 지난 1999년 말 1만 달러가 채 안되었으나 2007년에 잠시 2만 달러를 넘어섰다가 작년의 글로벌 위기로 다시 1만9천 달러대로 내려앉았다. 영아 사망률은 99년 6.2%에서 06년에는 4.1%로 감소하였고 고졸자의 대학 진학률은 68%에서 84%까지 높아져 교육의 과잉투자 논란까지 나오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론 미래가 걱정되는 모습도 적지 않다. 14세 미만 어린 인구 비중은 21.1%에서 16.2%까지 떨어진 반면 65세 이상 비중은 7.2%에서 11%로 높아진다. 그러나 가계의 개인 총 저축액은 2000년 51.5조원에서 지난 07년에는 42.3조원 수준까지 떨어져 개인의 노후는 물론 국가의 성장잠재력까지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한편 일자리는 지난 9년 동안 일 년에 평균 30만개도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20대 청년 일자리는 이미 2001년부터 절대 숫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10년을 내다볼 때 일자리 감소야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자리 감소는 그 자체로 사회문제가 되지만 우리의 경우 다른 경제사회적 피해를 일으킨다. 사회는 급격히 고령화되어 복지수요가 급증할텐데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면 기존 근로자와 기업에게 복지비 부담이 집중될 것이고 이는 사회적 반발을 야기함은 물론 기업의 경쟁력에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왜 일자리가 자꾸 줄어드는가? 일자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이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모르지 않는다. 답을 알고 있으나 실천에 옮기는데 주저하다가 상황이 악화되고 있을 뿐이다.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까닭은 고용의 기본원리인 생산성과 노동비용의 등가성(等價性)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고용주 입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생산성)보다 나가는 것(노동비용)이 많으면 일자리를 늘릴 수가 없는 건 당연지사다.
우리나라에서 노동비용이 빠르게 증가하는 까닭은 임금 상승도 원인이지만 임금과 고용에 관한 제도적 경직성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이 큰 원인이다. 임금 경직성을 예로 보자. 연공급체계로 인해 우리나라 생산직 10년차의 임금은 1년차 직원의 2배가 넘는다. 이는 유럽 국가들의 1.2~1.3배에 비해 월등히 높을 뿐 아니라 일본의 1.6배에 비해서도 높다. 이같은 연공급 임금체계를 바꾸려하면 노동조합이 강하게 반발한다. 기업의 사회보험 부담 또한 지난 10년간 약 4배나 증가하였다.
고용경직성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 많은 직장에서 젊은 계약직 사원의 생산성이 나이든 정규직 두 사람을 합친 것보다 높다. 그러나 2년 기간제한 법 때문에 그는 나가야 하는데 정규직은 마냥 철밥통 보호를 받고 있다.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정규직 한 명과 교체할 수만 있어도 기업은 물론 나라의 장래도 밝아질텐데 그러질 못하니 청년실업만 증가한다.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가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노동유연성 순위는 2003년 53위로부터 2007년 131위까지 계속 밀리고 있다. 그리고 금년에 발표된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30개 회원국 중 노동유연성이 꼴찌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정규직의 과도한 보호가 원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같은 경직성의 심화가 일자리 창출을 막고 특히 청년실업을 악화시킨다는 것은 이미 여러 나라의 경험을 통해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법 제도는 지난 수년간 계속 경직성을 심화하는 쪽으로 바뀌어왔다. 계약직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입법이 대표적 예이며, 정리해고자에 대한 우선재고용을 의무화한 것이 또 다른 예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 심화가 우리나라 일자리 감소의 중요한 원인임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유연성 제고가 필요함은 오래 전부터 주장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이 지지부진하다. 이유는 정부와 국회 등 팔을 걷고 나서야 할 곳에서 노동계 등의 반대를 의식하여 근본적 치유를 자꾸 뒤로 미루고 지엽적 처방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근본 처방은 중장기 과제로 미루어 두고 사회적 기업이나 임금피크제 같은 지엽적 대안에 시간을 쏟고 있다. 문제는 중장기 과제로 미루어 두는 사이 시간이 흘러 10년이 훌쩍 지나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지금대로라면 앞으로 또 다른 10년도 금새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일자리 사정은 더욱 나빠져 있을 것이다.
세월은 빨리 간다. 언제까지 중장기 과제로 미루고만 있을 것인가. 정부와 국회는 노동시장 유연화 방향으로 노동관계법을 개정하고 기업은 임금체계를 유연하게 바꾸어 생산성과 노동비용의 등가성을 회복하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다. 유연화에 따를 수 있는 근로자의 생활불안은 사회안전망으로 푸는 것이 바른길이다. 영국의 대처 수상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개혁을 이룬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리더십으로 성과를 만들었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남 성 일
[전]국무총리자문기구 정책평가위원회 민간위원
[현]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현]한국노동경제학회 부회장
[현]서강대학교 경제학부 학장 및 경제대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