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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송년특집⑥---에스토니아 사회문화는 어떤가

2009송년특집⑥---에스토니아의 사회 문화는 어떤가


에스토니아의 교육제도는 19학년까지를 의무교육으로 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하는 학교는 12학년의 (초등9년, 중등3년) 학제로 되어 있으며,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학교는 11학년제로 되어 있다.


1993년 14만2000명의 학생이 에스토니아어 학교에, 7만명이 러시아어 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각각의 학교는 상대언어도 가르치고 있다. 문맹률은 아주 낮은 상태로 1989년 조사에 따르면 성인인구의 약 99.7%가 글을 알고 있다. (사진:깨끗한 탈린 시가지 골목길)

에스토니아 노동력은 산업 33%, 농업 12%, 교육문화 10%, 건설 10%, 서비스와 금융이 44.7%로 이루어져 있다. 에스토니아는 구 소련 연방에서 가장 개발된 지역이었으며 아직도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문화는 국가적으로 눈을 뜬 시기인 19세기 동안에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발전은 노래와 전승문학과 같은 에스토니아의 농부문화의 요소가 1850년 이후의 에스토니아의 첫 문화엘리트와 만남으로 이뤄졌다.

 

문학의 발전은 1810년대 애국시인 크리스티안 자크 피터슨(Kristjan Jaak Peterson) 과 함께 일찍 시작되었다. 1944년 독일의 패배로 인하여 많은 에스토니아 문화엘리트들이 나라를 떠났다.


스탈린의 압제 아래 에스토니아 문화는 정권의 정치선전 요구로 천시되었다. 1950년 에스토니아 공산당은 숙청을 단행하였는데 예술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형식주의, 국수주의 죄명 아래 추방되거나 유배 당했다. 후르시쵸프의 통치기간인 1960년대가 되어서 에스토니아의 문화는 다시 활동이 시작되었으며 이는 외국과의 문화적 접촉과 새로운 세대의 작가, 예술과, 작곡가, 시인들의 귀환으로 이뤄진 것이다.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의 에스토니아 문화는 정부의 통제 아래 다시 냉각기를 맞았다.그러나 1986년 글라스노스트의 물결로 다시 활발해졌다. 그러나 경제불황으로 인하여 에스토니아 문화는 시련을 겪게 되었는데 1990년과 1991년 종이 부족으로 한정된 양의 책만이 출판되기도 했다한다. 최근 에스토니아의 많은 미술가, 시인, 작가들이 정치 활동에 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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