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특집:한국선주협회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현안은

한국선주협회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의미와 현안은

국민의 호응 받는 진정한 외항해운산업으로 거듭나야

정부는 제2의 해운업하기 좋은 나라 관련 정책 시행도

2020년 선박보유량 1억톤 해운수입 100조원 달성목표

  

한국선주협회가 오는 20일 창립 50주년을 맞이 한다.


우리나라 외항해운업체들의 모임인 이 협회는 출범 반세기만에 181개 외항해운체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가운데 창립 50주년을 계기로 2020년 세계 3대 해운강국 도약을 위한 「한국해운 비전 2020」을 선포한다.


「한국해운 비전 2020」은 오는 2020년에 한국상선대 1억톤, 해운수입 100조원 달성을 통해 세계 3대 해운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협회는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선박금융 전문기관 설립을 골자로 한 선진선박금융 시스템 구축 등 해운산업 경영환경 개선에 주력하고, 조선과 선박관리업, 해운중개업, 선주상호보험 등 해운관련산업의 동반발전을 도모하기로 했다.


아울러 우수 해운전문인력 양성과 해운 녹색성장 기반 구축 등 친환경 녹색해운을 구현하고, 새로운 수송시장 개척과 해외 특수화물 영업력 강화 등  해상운송시장에서 우리 해운의 경쟁력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한국선주협회가 발족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해운산업 토양은 거의 황무지나 다름 없었다. 지난 1950년대 중반에 설립된 대한대형선주협회와 한국대형선주협회는 1959년 하반기에 해운입국을 향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양 단체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1960년 6월20일 한국선주협회를 발족시키면서 현재의 한국선주협회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통합협회 발족 당시 회원사 수는 12개사, 보유선복량도 10만톤에 불과했다. 이후 협회는 정부와 함께 해운산업의 발전을 위해 각종 선진해운제도를 벤치마킹하여 이를 도입하는 한편, 한국상선대의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 해운산업은 양과 질적인 면에서 크게 성장했다. 오늘날 협회 회원사 수는 181개사로 늘었으며, 이들이 벌어들인 해운수입은 470억달러로 국가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 외항상선대는 2010년 1월 현재 4,436만톤(DWT : 재화중량톤)으로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 5위의 해운국으로 발돋움했다.


해운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가 반세기만에 세계 5위의 해운국가로 성장한 것은 세계 해운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수 없는 일대 사건(?)으로서 세계해운업계가 한국해운의 눈부신 발전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이같은 고속성장은 3면이 바다이고, 남북이 분단된 사실상 도서국가나 다름없는 지정학적인 지리조건도 크게 작용했지만, 무엇보다도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시스템상 해운을 거치지 않고서는 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정부의 정책적인 의지와 해운입국을 향한 해운인들의 노력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사실상, 정부는 해방과 동시에 해운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해운산업을 국가차원에서 육성키로 하고, 지난 1949년 대한해운공삽사법을 제정하여 이듬 해인 1950년 국영기업인 대한해운공사를 출범시켰다.


이어 정부는 지난 1967년 해운진흥법을 제정하여 해운기업에 대한 세제지원과 함께 화물유보제도를 시행하여 해운산업 발전기반을 조성하였으며, 1975년에는 계획조선제도를 도입하여 한국상선대의 증강을 도모하는 한편, 1976년에는 해운항만청을 창설했다.


그러나 1970년대 말에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극심한 장기해운불황으로 많은 외항해운기업들이 자본잠식상태에 빠지자, 정부는 1983년 해운산업합리화를 추진하여 1984년에 11개사를 33개사로 집약, 정비하는 대수술을 단행했다. 우리 해운산업 태동 이후 이처럼 심각한 위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외항해운업계는 협회를 중심으로 단합하여 1980년대 후반에 벼랑 끝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미수교 상태에 있었던 중국과 소련 등 북방항로를 개척하는 한편, 선대 확충을 통해  정기선항로를 지속적으로 확대시켜 나갔다.


또, 1996년에는 해양행정 일원화를 통해 해양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갖고 해양수산부를 창설하여 체계적인 해양정책을 수립하여 추진했다. 해양수산부 발족 이후 한국상선대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진해운제도가 잇따라 도입되면서 우리나라 해운산업은 고도성장기로 접어들었다.


특히, 정부는 한국선주협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1997년 해운업계의 최대 숙원이었던 선박도입관세를 철폐했다. 항공기의 경우 도입관세가 없었으나, 선박의 경우 선가의 2.5%를 관세로 부과함으로써 한국상선대의 국제경쟁력이 크게 뒤져 있었다. 그리고, 1997년에 국제선박등록법을 제정하여 국제선박 지원근거 및 안보선대 도입장치를 마련했다.


이어 정부는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해운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한국선주협회와 함께 선진해운제도를 지속적으로 벤치마킹하여 국내법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2002년 제주선박등록특구제도와 선박투자회사제도가 도입된데 이어 2005년에는 대부분의 선진해운국에서 시행중인 선박톤세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우리나라 해운제도는 선진해운강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선진화를 이루어 냈다.


이제 외항해운업계는 50주년을 맞이해 지난 2008년 9월 미국발 금융위기로 야기돤 사상 최대의 해운위기를 슬기롭계 극복하고, 한국선주협회 50주년을 계기로 세계 3대 해운강국 도약을 위해 힘차게 전진해야 한다.

 

또 '2020년 선박보유량 1억톤, 해운수입 100조원 달성을 통해 세계 3대 해운강국 도약'을 위해 외항해운업계는 협회를 구심점으로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는 진정한 외항해운산업으로 거듭나야만 된다.

 

무역입국을 지향하여 선진강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외항해운업이 얼마나 중요한 일과 역활을 하는것에 대한 국민적인 인식제고에 따른 지지기반이 정착돼야 이같은 목표를 실질적이고 더욱 효과적으로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에 무엇보다 정부는 제2의 해운하기 좋은나라를 만들기 위한 중장기 정책을 차질없이 수립 시행해야 한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이미지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