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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탐방

기획특집:복원 광화문 15일 개문됐다

복원 광화문 15일 개문

  

광화문이 65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15일 현판식을 갖고 개문됐다. 

  

 


이에 한일강제병합 100년인 15일 일제가 훼손한 광화문과 경복궁이 원래 모습을 되찾아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이날 용성문(用成門), 협생문(協生門), 동·서수문장청(守門將廳), 영군직소(營軍直所) 등 건물과 광화문 좌;우의 궁장(宮墻. 궁궐을 둘러싼 성벽) 일부, 광화문에서 흥례문으로 이어지는 어도(御道)도 함께 공개됐다.

  

문화재청은 조선 고종2년인 1865년 중건 당시 현판 글씨를 토대로 현판을 복원했고, 북쪽으로 11.2m, 동쪽으로 13.5m, 경복궁 중심축에서 3.75도 틀어졌던 것도 바로잡았다.

  

복원 광화문' 4년전과 어떻게 달라졌나= 15일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 광화문은 고종 중건 당시인 1865년 모습을 기준으로 복원된 것으로, 2006년 이번 복원작업에 들어가기 전의 '1968년 복원판'과 대체로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기존 광화문이 콘크리트였던 데 반해 이번에는 목조로 복원됐다는 점이다. 도성(都城)의 정문이었던 숭례문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목조 건축물로서의 의미가 살아난 것이다.

  


또 현판과 위치, 서까래 등 '1968년 복원판'과 비교해 달라진 부분이 많고 목조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고 있는 부분도 있어 주목할 만하다.

  
1900년대 초의 유리원판 사진을 디지털로 복원해 제작한 광화문의 새 현판은 고종 때 공사책임자였던 훈령대장 겸 영건도감제조 임태영(任泰瑛)의 글씨다. 각자장(刻字匠. 중요무형문화재 106호) 오옥진 선생이 글씨를 새겼고 단청 채색은 단청장(丹靑匠. 서울시무형문화재 31호) 양용호 선생이 맡았다.
  
 
또 복원된 광화문은 기존 위치에서 남쪽으로 11.2m, 서쪽으로 13.5m 떨어진 곳에 세워졌다. 각도도 경복궁 중심축을 기준으로 3.75˚ 비틀어져 있던 것을 이번에 바로 잡았다.

  
이로써 광화문은 근정전-근정문-흥례문으로 이어지는 경복궁의 주요 전각ㆍ문과 정확히 평행을 이루게 됐다. 광화문 광장 쪽에서 열린 광화문을 바라보면 문 사이로 흥례문의 모습이 정면으로 보인다.

  
광화문의 서까래(椽木)는 1968년 복원 때 일제 당시 잘못된 실측 자료를 바탕으로 해 크기가 15㎝로 얇아 비례가 잘 맞지 않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번 복원에서는 이 역시 21㎝로 바로잡았다.

  
지붕과 처마를 떠받치는 서까래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문루(門樓)가 훨씬 더 안정감 있고 튼튼해보이게 됐고 보기에도 더 웅장한 모습을 갖추게됐다.

  
이에 더해 광화문 복원의 총책임자인 도편수 신응수 대목장(大木匠)은 "기둥머리를 좌우로 연결하는 부재인 창방은 지나치게 큰데 반해 기둥은 너무 가늘었던 문제도 이번 복원을 통해 원래 모습대로 되돌렸다"고 설명했다.


강렬하고 장엄하면서도 속되지 않은 붉은빛으로 칠해진 문을 열면 천정에는 화려하게 그려진 봉황이며 현무며, 기린이 한 쌍씩 보인다. 세 문 중에서 가운데 문은 과거 임금만 드나들 수 있었던 문이다.

  
광화문 앞뒷면에 있는 빗물받이는 용머리와 연꽃 모양으로 각각 만들어져 멋과 운치를 더했다. 담장에는 해, 달과 8괘를 그려놓았다.

  
멋스럽게 빠진 광화문 문루의 처마도 빼놓지 않고 봐야 할 명품이다. 서까래가 굵어지면서 예전보다 더 자연스러우면서 아름답다. 지붕 위로 눈을 들면 망새라고도 부르는 취두(鷲頭)가 보인다. 화재를 막고자 궁궐이나 전각 지붕 위에 놓은 장식물인데, 기존 광화문 해체 공사 때 가장 먼저 조심스럽게 해체했을 만큼 상징적 의미가 크다.

  
광화문 앞 좌우에 자리 잡은 해치도 복원공사가 완료됨에 따라 시민들과 재회한 석물이다. 공사 기간에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겨졌지만 이번에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화재를 막아준다는 속설이 있어, 두 번이나 소실된 광화문의 슬픈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광화문 홍예문을 지나면 문 뒤편에 중건 당시 부속 건물 5개 동도 복원된 것을 볼 수 있다. 좌우의 동ㆍ서수문장청, 용성문, 협생문, 영군직소 등이다.

  
이번 광화문과 주변 전각들의 복원으로 고종 당시 500여동에 이르던 경복궁 내 건물 가운데 125동의 복원이 끝났다. 동 수를 기준으로 하면 25%가량 완성된 셈이다. 광화문 뒤편의 건물 5개동도 여기에 포함된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20년간 진행할 2차 복원사업을 통해 고종 당시의 76% 수준까지 복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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