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8 (일)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민족의 혼이 숨쉬고 있는 강화도 마니산(摩尼山)참성대

백록담과 천지의 중간에 위치한 곳이 마니산 정상

民族萬代의 榮華와 發展을 위해 春秋로 祭事를 올린 곳

  

  

단군신화의 명산인 강화도 마니산(摩尼山)은 그 어느 山보다 바위산이면서 숲이 우거져 있어 더욱 산내음이 물씬 풍기는 산이었습니다. 468m에 이르는 산이지만 단군로 코스로 오르는 산행은 그리 쉬운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주능선에 도발하면서부터 예상했던 등산과 함께 바다 구경까지 겸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의외의 짙은 안개로 그런 아름다움은 느끼지 못해 아쉬운 산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의 높이는 낮았지만, 주능선이 바위능선으로 되어 있어 등산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산임에는 분명했으며 민족의 영산이라는 느낌때문인지 다른 산행보다는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정상인 사적 제136호인 참성단은 철조망으로 보호돼 있어 마침 강화군에 나온 분께 물어보았더니 "참성단 둘레의 축조 돌을 일부 등산객들이 빼가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철조망으로 보호하게 됐다"는 군요.

 

기가 막힐 일입니다. 매년 개천절에 단군께 제사를 올리고 있는 제단의 축조 돌을 빼가서 무엇으로 사용하려는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이런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다니 한심합니다. 오전 10시에 산행을 시작하여 정상에는 정오경에 도착했으며 정상에서 바다쪽으로 보면, 염전인듯한 경작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등 안개가 없어져 빼어난 경관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단군이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神仙이 된후 黃海道를 거처 마니산에서 지내며 民族萬代의 榮華와 發展을 위하여 春秋로 祭事를 올리기 위하여 際檀을 쌓고 祭를 올리던곳이 마니산 정상의 '참성단'입니다. 그후로 역대 王祖가 첨성단에 해마다 祭를 올렸으며, 해방후 全國體展의 부활과 함께 이곳에서 聖火를 點火 합니다.

  

또 마니산 정상에서의 일몰은 동해안의 일출과는 다르지만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정상 일출은 못보더라도 정상에서의 일몰은 일출과 비교될 수 있는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바다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시뻘건 태양이 주변의 산과 바다와 어우러져 아름답기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정 태순 장금상선 사장님과 이곳에 왔을때는 제단위에 제물을 차려놓고 국태민안을 위한 제를 올리고 일몰광경을 만끽했는데 이번엔 일몰을 보지 못하고 하산해야 했습니다. 전등사를 가기 위해서지요.마리산(摩利山이라고도 부르는 이 정상이 백두산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의 중간지점에 위취하는 곳으로 우리나라 산중에는 가장 기(氣)가 강하다고 합니다. 인공위성에서 이곳을 보면 파란줄기의 기둥이 형성된다고 하니 말입니다.

  

민족의 영산인 정상에서의 마음가짐을 더욱 정갈하게 하여 앞으로 나에게 부여된 해사경제 언론창달의 책무를 차질없이 차근차근 풀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시한번 세기고 강화도의 특징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섬지역의 이곳에서 어떻게 인삼이 생산되고 벼농사가 잘되며 특히 순무우가 이곳에서만 생산되는 지를 말입니다.임금이 비록 피난온 곳이긴 하지만 강화도는 분명 축복받은 땅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또 이곳 정상에 오르는것이 아닐런지요.

  

과거 정사장님과 그런 이유에서 이곳을 왔던 겁니다. 그때는 하산하는 계단코스를 왕복했는데 역시 계단을 잘 만들었지만 왠지 자연이 주는 단군로코스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단군로 코스도 이제 우리산행이 마지막이 되고 월요일(5월22일)부터는 계단코스를 만드는 작업을 하기 위해 등산로를 일시 폐쇄한다고 하는 군요.

  

아기자기한 능선 코스는 아니지만 내려 오는 계단길은 온몸을 흔들어 줄 수 있는 걸음으로 내려 올 수 있어 그것도 역시 좋았습니다.전등사는 오래된 사찰로서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대웅전옆에는 이사찰에서 생(生)을 마감한 주지스님 등 고승들만을 모신 사당이 있어 특이했습니다.

 

또 정수사는 신라 선덕왕때 회정선사가 창건하고 함허대사가 절을 중수했다는데 함허동천엔 함허대사가 수도하며 썼다는 글씨가 남아 있다고하는 군요.북한 개성의 송악산을 마주보고 잇는 강화도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밤마다 대남방송으로 잠을 잘 청하기 어려웠던적이 있었습니다.

  

강화도 정신요양원엔 아들 둘이 어릴적부터 봉사활동을 하러 주말마다 온곳으로 하루 묵고 간적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시골 분위기의그런 운치가 많이 없어졌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발전은 늦은편인 것 같습니다. 강화도는 신미양요 등 외세의 침략을 수 없이 받은 곳이지만 우리민족의 영혼이 숨쉬고 있는 곳이 었습니다. 그렇기에 강화군 등 행정관서 등은 쓰레기를 청소하는 노력으로 주변 환경을 더욱 깨끗이 하는 마음자세를 갖춰야 할 것으로 느껴진 산행이 었습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이미지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