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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 연회장에서 MP3 들으며 커피를

100년 역사 근대문화재 리모델링으로 거듭나


1백년의 추억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근대문화재가 리모델링으로 거듭나고 있다. 오랜 세월 속에 낡고 허물어져가는 근대문화재건물들을 정성스럽게 손질해 실용적으로 이용하면서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높이 끌어올리고 있다. 용도도 미술관, 박물관, 은행, 사무실 등 다양하다. 대부분의 근대문화재가 50년 이상 된 건물로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게 주류를 차지한다.

  

지난 11일 토요일. 유서깊은 덕수궁의 정관헌(등록문화재 82호)에 ‘무엄하게도’ 젊은 남녀 한쌍이 MP3 음악을 들으며 캔커피를 홀짝이고 있다. 정관헌은 궁궐 내 최초로 서양식 건축양식과 전통 건축 양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건물로 유명하지만 그동안 일반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 없었다. 그저 바라볼 수만 있을 뿐 오르고 내리지는 못했었다.

  

미술관·박물관·의회건물·콘서트홀등으로


그러나 덕수궁관리소가 지난 8월 부터 매주 토요일 일반관람객들에게 개방하면서 개인과 단체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다. 지난 9월 2일과 9일에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 27호 ‘궁중다례의식 보유자’김의정 이사장의 (재)명원문화재단이 주관하여 다양한 전통다례의 시연은 물론 전통문화를 체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최했다.

  

그런가 하면 각종 학술행사가 열리거나 일반인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고종황제가 연회를 베풀거나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던 정관헌이 한세기가 흐른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 본뜻을 유지하고 있는 것. 문화재가 ‘보존’이란 엄숙한 이미지를 벗고 부드러운 ‘활용’의 얼굴로 다시 태어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 내진설계가 처음 도입된 남대문로 한국전력사옥(등록문화재 1호)


아직까지 구한말 분위기가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으로 알려진 서울 정동 부근의 서울시립미술관(등록문화재 제237호)은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곳이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 37번지에 자리 잡은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경성재판소(1928년 설립)였다. 점심 무렵 직장인 삼삼오오 커피한잔을 들고 산책을 나오는 이 곳은 주변의 낙엽수들과 함께 근대기의 건축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이 한껏 느껴진다. 특히, 자유로우면서도 절제감이 느껴지는 아치형현관이 돋보인다.

  

해방 후 대법원청사로 쓰였던 이 건물을 서울시가 2002년 리모델링해 미술관으로 거듭난 근대문화재다. 고풍스런 실내공간, 유명작가의 전시작품, 편리한 교통으로 시민들이 자주 찾는 인기명소가 됐다. 정면 벽을 그대로 둔 채 내부만 미술관 성격에 맞도록 손질한 경우다. 관청이었다가 상업시설 겸 실내광장으로 활용 중인 호주 시드니 구 우체국처럼 파사드(정면) 보존사례다.


친일파 변절의 모습 기록한 부민관, 풀뿌리 민주주의 구심체로

 

서울시의회건물(등록문화재 제11호)도 리모델링을 거쳐 잘 보존관리 되고 있는 근대문화재 중 하나다. 서울시 중구 태평로 1가 60-1번지. 덕수궁 옆에 자리 잡은 이곳은 1935년 12월 10일 부민관(府民館)이란 이름의 공연장으로 지어졌다.

  

일본 동경 히비야(日比谷)에 있는 공회당을 모델로 삼아 세워진 이 건물은 철근콘크리트조(연면적 1714평/7,097.3㎡) 탑식지붕모양이 상징적이다. 대지 1780평, 건축면적 584평에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다.

  

2002년 5월 31일 문화재로 등록된 이 건물은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 각종 행사장으로, 또 1954년 6월 국회가 여의도로 옮겨가기 전까진 국회의사당으로 쓰였다. 제헌국회 출범, 초대 대통령 선출, 사사오입 파동을 비롯한 숱한 질곡의 정치사건들이 펼쳐져 국민들 눈과 귀가 쏠렸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태평로 구 국회의사당 등록문화재 11호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국회가 여의도로 옮겨가기 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쓰이던 서울시의회건물은 70여년전 부민관 시절에는 친일세력을 응징하기 위해 포탄이 던져졌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방자치제가 본격 도입되면서 지금은 서울시 풀뿌리민주주의 구심체로 역할을 하고있다. 겉은 옛 모습 그대로지만 안은 의회의사당 성격에 맞도록 손봐 근대문화재로서의 가치도 지니면서 공무시설로서 활용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고전주의양식의 병원건물에서 엘리베이터 추가 등 설비를 개선한 스페인 마드리드 소피아국립예술센터 같이 빌딩의 하드웨어적 요소를 잘 살려낸 경우다. 태평로도로(50m 폭) 확장공사로 앞쪽 12m를 도로에 내주고 1980년 7월 정문과 현관 등 280평이 헐리는 아쉬움이 있었다.

  

서울시 광진구 화양동 1번지에 있는 건국대학교박물관(등록문화재 제53호)도 리모델링에 성공한 근대문화재로 빼놓을 수 없다. 1908년 1월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1910년 일제강점까지 서북학회 등 애국계몽운동 전진기지로 쓰이다가 학회의 강제해산 후 오성학교(전신 協成學校) 교사로 사용됐다. 보성법률상업학교(1918~22년), 협성학교로 쓰이던 중 1938년 민중병원으로 전용됐다. 건국대학교와 인연이 된 건 8·15해방 후. 1946년 5월 설립된 조선정치학관(전신 건국대학교)으로 사용됐고 건국대 야간부 교사로도 활용되다 건물이 헐렸다.

  

건국대는 회관의 해체물을 보관해오다 1984년 12월 지금의 건국대캠퍼스(서울시 광진구 모진동 93-1) 안으로 이전복원, 1985년 11월 23일 준공했다. 연면적 300평, 반지하, 지상 2층, 옥탑으로 돼있으며 돔식의 지붕, 미적 감각의 창문디자인, 원형시계탑 등이 독특하다. 건국대박물관으로 용도가 바뀐 이 건물 지하층은 수장고, 1~2층은 전시실이다. “학교 안에 있어 보존이 잘 돼있을 뿐 아니라 고풍스런 이미지와 조형미가 박물관기능에 어울린다”는 게 문화재전문가들 시각이다.

 

건국대학교 구 서북학회 회관. 등록문화재 53호


한국전력사옥, 내화 내진설계 적용 최초의 건물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2가 5번지 한국전력사옥(등록문화재 1호)도 리모델링 성공 근대문화재다. 대지 700평, 건축면적 266.3평, 연면적 1666평(5,957.1㎡), 지하 1층, 지상 5층, 옥탑 2층 규모의 철근콘크리트조로 등록문화재 제1호 기록을 갖고 있어 근대문화재 간판 격이다.

  

2002년 2월말 최초로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한전사옥은 1928년 12월 30일 지어져 올해로 78년째를 맞고 있는 건물이다. 근대사무실 양식을 보여주고 있고 불·지진에도 버텨낼 수 있게 내화·내진설계를 적용한 국내 최초 건물로 유명하다. 1923년 9월 동경대지진을 참고로 지어져 뼈대가 아주 튼튼하다는 게 건축전문가들 설명이다.

  

한전은 서울 충무로 2가에 있던 사옥을 192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철근콘크리트조의 건물뼈대를 살리면서 내부를 손질, 현대식사무실로 업무에 불편함 없이 활용중이다.

  

처음 지을 땐 5층짜리였으나 해방 후 옥상부분을 없애고 2개 층을 증축했지만 건물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1층은 앞뒤 좌측의 3방향으로부터 진입하고 안쪽은 영업실, 진열실로 나눠져 있다. 엘리베이터 설치(2대)와 각층의 평면을 모듈화 시켜 사무실로 구분한 해놓은 점이 특이하다.

  

손질을 거쳐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는 근대문화재론 서울시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 맞은편의 서울시청 별관(등록문화재 제238호)도 포함된다. 1938년 지어진 이 건물은 일본 미쓰이(三井)물산주식회사 사옥으로 쓰였다가 미국문화원이 들어가기도 했던 국제적 성격의 근대문화재다.

  

청사가 부족한 서울시가 건물 안을 부분 수리해 사무실, 회의실, 강의실 등 용도에 맞도록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다. 겉모습은 역사의 묵은 연륜이 역역하나 들어가면 현대식이다. 밝은 조명, 깨끗하게 배치된 각 방들, 각종 편의시설들이 손색없이 갖춰져 있다.

  

사단법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사들여 2003~4년 복원공사 후 유품전시관으로 사용중인 서울 성북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혜곡 최순우의 옛집(등록문화재 제268호), 1921년 지어져 2002년 서울도시개발공사에 의해 도시형주택으로 복원된 서울 종로구 계동의 서울 북촌문화센터(구 민형기 가옥·등록문화재 제229호) 등도 좋은 사례들이다.

 

예산호서은행본점. 시도지정기념물(충남) 제66호

 

일제 수탈의 아픔 오롯이 간직한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서울 못잖게 지방에서도 리모델링에 성공한 근대문화재들이 적지 않다. 부산시 중구 대청동 2가 24-2에 자리 잡은 지상 2층 규모의 부산근대역사관(시‧도기념물 제49호).

  

이 역사관은 맨 처음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사무실로 지어졌던 건물이다. 철근콘크리트조로 서구양식이 도입될 무렵의 건축경향을 살필 수 있는 국내 몇 남지 않은 문화재이기도 하다. 이 건물 역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용도가 여러 번 바뀌었다. 1929년 9월 건립된 뒤 1945년 8월 15일까지 지점으로 쓰이다가 해방을 맞으면서 부산에 진주한 미군들 숙소로 이용됐다.

  

1949년 7월부터는 첫 개원된 미국 해외공보처 부산문화원으로, 6·25전쟁이 터지자 미국대사관(1950~53년)으로 쓰였다. 우리정부로 반환된 건 1999년부터로 1998년 부산 미국문화원이 철수하면서다.

  

부산시는 이듬해 이 건물을 인수, 외세침략의 상징이었던 만큼 시민들에게 부산의 아픈 지난날을 알릴 수 있는 교육공간으로 활용키로 하고 2003년 근대역사관으로 만들었다. 이곳엔 개항기 부산, 일제의 부산 수탈, 근대도시 부산, 동양척식주식회사, 근·현대 한미관계 내용들이 짜임새 있게 전시돼있다. 지진으로 훼손된 근대건축물을 되살린 일본 요코하마개항기념회관을 연상시킨다.

  

충남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482번지에 있는 충청하나은행 예산지점 및 건설공제조합사무실(시도지정 기념물 제66호)도 리모델링으로 민족의 숨결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1922년 11월 1일 예산호서은행 본점으로 출발한 이 건물은 지상 2층, 대지 1286.66㎡, 건축면적 395.93㎡, 건물연면적 687.17㎡로 일본인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가 설계했다.

  

1942년 본점이 부근으로 옮겨가면서 이듬해 10월 1일 조흥은행 예산지점건물이 됐다가 1984년 4월 충청은행에 인수됐다. 그 뒤 성업공사(현재 자산관리공사)로 넘어가 최근 경매로 개인에게 넘어갔다. 현재 1층엔 은행지점, 2층엔 조합사무실로 쓰이고 있는 이 건물은 옛 그대로의 외벽과 달리 안은 현대식으로 깨끗하게 탈바꿈했다. 충남지역에 순수 토착지주들 자본으로 가장 먼저 세워진 지방은행건물로 상징성이 강한 곳이기도 하다.

 

現 부산근대역사관 / 舊 동양척식주식회사부산지점. 시도기념물 49호


이밖에 원래는 관공서 건물이었으나 몰라보게 리모델링한 경기도 가평의 자라섬 재즈센터와 경남 통영시의 페스티벌 센터, 그리고 대전시 중구에 자리 잡은 대전 열린미술관(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등록문화재 제100호) 등도 변신에 성공한 지방 근대문화재들이다.


근대유산의 대변신…관공서가 재즈센터, 전통 한옥이 동사무소로

  

우선 가평 자라섬 재즈센터는 예전엔 관공서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분위기 있는’ 카페콘서트홀로 변신했다. 밝은 색으로 바뀐 2층 규모의 건물외관은 물론 현대식 유리문으로 단장된 현관, 무대, 실내편의시설을 포함해 젊은이들이 좋아할 스타일로 꾸며졌다.

  

윤이상 음악축제가 열리는 페스티벌 하우스는 43년 통영군청으로 지어졌던 건물로 일제의 잔재라는 오명으로 인해 보존과 철거의 논쟁이 격렬했으나 지금은 세계적인 음악가를 기리는 명소로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

  

대전 열린미술관도 서울시립미술관처럼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1958년 지어진 이 건물은 품질관리원 청사로 쓰였으나 최근 문화공간으로 부활된 것이다. 문화적으로 가라앉은 대전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대전시가 적극 나서 미술관으로 생기를 불어넣었다.

  

한편 22일에는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에 전국 최초로 전통 한옥 동사무소가 개청식을 열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940년대에 지어진 혜화동 74-30 번지의 대지 244평·건평 75평 한옥을 종로구가 2004년 사들여 리모델링한 것이다. 옛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한옥 동사무소는 기둥 곳곳에 위인들의 격언이 새겨져 있어 청소년들의 새로운 학습체험공간으로도 운영할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 전통가옥을 비롯한 근대문화유산의 보존을 위한 정부 예산이 대폭 늘어나고 문화재 리모델링 지원책도 한층 강화된다. 근대문화유산의 대변신이 예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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