企劃特輯=해양수산부가 어떻게 탄생했는가①
해사행정 일원화로 통칭된 당초 해양수산부는 여러부처로 분산된 바다관련 행정을 한곳으로 모아 하나의 부처로 출범시킴으로써 해양강국을 앞당겨 시현하자는 뜻에서 비롯됐다.
과거 해무청 당시, 사실상 해양관련 행정이 하나로 모아져 해무청이라는 부처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의해 운영된 점을 고려한다면 바다행정의 일원화는 정부수립과 더불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새로운 정권이 잇달아 탄생되면서 바다관련 행정부처는 여러곳에 흩어져 분산돼 교통부 농림부 산하에 의해 운영돼 온 형상으로 발전하는데 그쳤다.
이러한 현안을 감지해 온 선각자들은 해양분야의 비약적인 발전에 한계를 느끼게 돼 제대로 된 해사행정 일원화를 구축해야한다는데 뜻을 모아 왔다. 이에 따라 작고한 지철권 전 해무청 수산국장(사진:좌측 2번째), 이맹기 전 대한해운회장(좌측 첫번째) 등과 정연세 전 해운항만청장(좌측에서 3번째), 박종규 전 KSS해운 회장(우측에서 첫번째),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등이 해운 수산업계 대표로 앞장서서 이러한 뜻에 의지를 담아 신중하게 추진하면서, 해사언론인의 동조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한화갑 전 국회의원(좌측에서 4번째)이 가장 열성적으로 해사행정일원화에 의지를 담아 국정감사 등에서 의정활동을 전개했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김영삼 정권 출범 전, 대선 직전에 공식 선거일 하루 앞두고 김영삼 후보의 당시 비서관으로 일했던 현재 김무성의원이 해양업계 지도자를 인사동에 소재했던 민정당 당사에서의 해양업계 고위지도자 초청 간담회를 갖도록 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중재 역할 본의 아니게 수행한 바가 있다.(사진:김영삼 대통령 후보가 공식 선거 하루를 앞두고 개최한 해양업계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필자와 악수를 교환하고 있다)
따라서 해운수산업계 6명씩 12명과 전문 언론인 2명 등 모두 14명이 참석했던 이 모임이 해양업게로서는 정치권 대선 후보자와 첫 회의로 기록될 것이다. 이날 모임은 김영삼 후보로부터 공식적인 해사행정일원화 대선 후보자로의 약속을 받아 내는 큰 의미있는 날이 되었다. 물론 당시 경쟁 후보자였던 김대중, 정주영 등의 후보진영에서도 해사행정 일원화를 대선 공약으로 확정한 상황이었으나 김 후보 처럼 적극적으로 업계 지도급 인사를 만나지는 안았다.
해사행정일원화에 가장 적극적인 김영삼 후보는 대선 공식 선거 하루를 앞두고 해양업계 지도자를 만나 지지를 요청해던 사례만 보아도 해양에 대한 중요성을 강력하게 피력했던 후보로 생각된다.이렇듯 김영삼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 되면서 곧바로 정부조직 개편을 서둘러 추진하면서 공약데로 해양수산부를 출범시키게 된다.
김영삼 대통령은 해양분야 선각자들의 각고에 의해 만들어진 해양수산부 초대 장관에 정치적인 동반자였고 7선의원이었던 故 신상우 전 국회의원를 임명하기에 이르렀으나 청사 확보 문제에 진통을 겪게 된다. 광화문 중앙에 두자는 해운업계 의견에 맞서 수산업게의 의견이 달랐다. 결국 수산분야의 의견을 받아 들여 교통이 복잡한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진솔빌딩(사진:해양수산부 출범이라는 현수막이 걸린 진솔빌딩) 몇개층을 임대해 사용하여 정부수립 당시 해무청이래 해양수산부라는 해사행정일원화 행정부처가 탄생하게 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