企劃特輯=해양수산부가 어떻게 탄생했는가②
전형적인 정부 수립당시의 고위 공무원이었기에 본연의 선비자세를 견지해 왔던 그는 한일어업문제의 핵심이었던 이승만대통령의 평화선 정책을 주도해 입안하고 그 정책을 추진했던 담당 국장이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평화선이라는 정책을 마련하여 한일간 어업분쟁을 가장 국익에 우선을 두어 정책을 전개했기에 현재도 한국수산업의 대부로 불리기에 충분했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한 그가 못내 아쉬워햇던 현안이 바로 여러 부처로 분산된 해양분야의 행정 집행이 였기에 해사행정 일원화에 대해서는 남다른 집념을 보이기에 충분했다. 특집 등 좌담회 참석을 요청하면 흔쾌히 응해왔던 그는 해양수산부 창설의 밑거름으로 활약했던 수산계의 영원한 대부로 평가되기에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수산계에 이처럼 지철근 회장에 이어 현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으로 이어지는 인물이 있다면 해운계엔 고 이맹기 전 대한해운 회장(하단 사진:필자와 2002년 단독 회견 당시의 고인의 모습)과 박종규 전KSS회장이 관련업게의 지도급 인사로 각종 현안을 주도하여 처리했던 큰 인물로 활약해 왔다.
그는 평소 "나는 대한해운을 창업자들과 만들어 발전시켜 왔으나, 이 화사는 절대 자식에게 물려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유는 자식에게 물려 주면 회사도 망하고 자식도 망한다는 일화를 들려 주곤 했다. 그는 결국 다른 사업주 처럼 아들에게 대한해운을 넘겨 주어 그의 예견처럼 회사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결과를 맞이하고 야 말았다.
가장 오랜 동안의 선주협회장 등을 지낸 고인은 "나는 정형만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라고 말하곧 했던 그는 평소 필자를 귀하게 여겨 자주 만나주곤 했던 인물이다.
국책화물을 운송하는 외국선사의 국내 조선소 선박에는 수출금융 등 계획조선 혜택을 부여해서는 안되는 일이 던지 특히 해운산업합리화를 통해 무작위 선사를 통폐합하는데 있어 견인차 기능 등의 업계의 현안들을 대과없이 수행했던 일 등이 거의 폭 넓은 수완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특히 외국선사에 의존해 왔던 국내 LNG선 운항 사업을 전두환 정권 당시 청와대로 부터 최초로 승인받아 국적선사가 운항토록하는 등의 업적을 남겨 한국해운업 발전에 여러가지 큰 일들을 남긴 인물이다.
해사 행정일원화 문제와 관련해서는 평소 언론인과의 회견이나 인터뷰 등을 일체하지 않기로 유명했던 그는 기자에 대해서는 만사를 제체놓고 만나 주어 현안에 대한 평소 견해를 사심없이 털어 놓았다. 그의 논리는 바다를 중요시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가 잘 살 수 없기에 이와 관련된 정책집행 수립 등이 한곳에서 추진돼 그에 따른 효과를 가일층 배가 시켜야하고 민관의 협력을 돈독하게 도출하여 그 밑 바탕을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렇듯 고인된 지철근, 이맹기 전 회장은 우리나라 해양발전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평생의 직업으로 활약했던 인물로 해양수산부를 만든 핵심 인물인 것이다.
故 지철근 회장(하단 사진:필자가 주최한 해사행정 일원화 관련 특별좌담회에 참석 당시의 고인의 모습)은 해무청 당시 수산국장을 지낸 후 퇴임하여 본인의 아호를 딴 월해재단을 설립해 후배 수산인 양성에 평생을 쏟아온 인물이다. 잠시 수산업에 참여했으나 그 사업에 별 재미를 보지 못하다가 결국은 정리를하고 돈암동 사저 건물에 월해 재단을 운영하면서 매년 학자들에게 우수논문상을 수여하는 등 후진 양성은 물론 누구보다 해사행정 일원화를 해무청 당시에 체험했던 공직자 출신이었기에 여러차례 좌담회 등에 참석해 그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했던 바 있다.
전형적인 정부 수립당시의 고위 공무원이었기에 본연의 선비자세를 견지해 왔던 그는 한일어업문제의 핵심이었던 이승만대통령의 평화선 정책을 주도해 입안하고 그 정책을 추진했던 담당 국장이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평화선이라는 정책을 마련하여 한일간 어업분쟁을 가장 국익에 우선을 두어 정책을 전개했기에 현재도 한국수산업의 대부로 불리기에 충분했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한 그가 못내 아쉬워햇던 현안이 바로 여러 부처로 분산된 해양분야의 행정 집행이 였기에 해사행정 일원화에 대해서는 남다른 집념을 보이기에 충분했다. 특집 등 좌담회 참석을 요청하면 흔쾌히 응해왔던 그는 해양수산부 창설의 밑거름으로 활약했던 수산계의 영원한 대부로 평가되기에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수산계에 이처럼 지철근 회장에 이어 현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으로 이어지는 인물이 있다면 해운계엔 고 이맹기 전 대한해운 회장(하단 사진:필자와 2002년 단독 회견 당시의 고인의 모습)과 박종규 전KSS회장이 관련업게의 지도급 인사로 각종 현안을 주도하여 처리했던 큰 인물로 활약해 왔다.
3星으로 해군참총장을 지낸 이맹기 회장 그는 516군사 혁명을 반대했던 진정한 군인으로 입법위원에 발탁되고 그후 대한해운공사 사장으로 재직한 후 대한해운을 설립하여 국책 화물을 가장 많이 운송하는 대형선사로 발전시켜 왔다.
그후 연로하여 외아들인 이진방 씨에게 경영을 이관하면서 작고하여 현재 대한해운은 법정관리를 거쳐 제3자에게 매각되는 비운을 맞고 있다.
그는 평소 "나는 대한해운을 창업자들과 만들어 발전시켜 왔으나, 이 화사는 절대 자식에게 물려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유는 자식에게 물려 주면 회사도 망하고 자식도 망한다는 일화를 들려 주곤 했다. 그는 결국 다른 사업주 처럼 아들에게 대한해운을 넘겨 주어 그의 예견처럼 회사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결과를 맞이하고 야 말았다.
가장 오랜 동안의 선주협회장 등을 지낸 고인은 "나는 정형만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라고 말하곧 했던 그는 평소 필자를 귀하게 여겨 자주 만나주곤 했던 인물이다.
특히 해사행정 일원화에 대한 보도기사의 경우는 하나도 빠짐없이 스크렙하여 읽어보고 귀띰을 스슴럼없이 해 주곤 했던 만큼 남다른 애착을 갖고 이 일의 추진과 관련해서는 대 업계에 대한 여론 확산에 노력해왔으며, 더불어 군인 출신으로 강직하지만 유머와 손박함으로 항상 주위사람들이 그를 따르도록하는 면모를 갖춰 왔다.
국책화물을 운송하는 외국선사의 국내 조선소 선박에는 수출금융 등 계획조선 혜택을 부여해서는 안되는 일이 던지 특히 해운산업합리화를 통해 무작위 선사를 통폐합하는데 있어 견인차 기능 등의 업계의 현안들을 대과없이 수행했던 일 등이 거의 폭 넓은 수완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는, 특히 외국선사에 의존해 왔던 국내 LNG선 운항 사업을 전두환 정권 당시 청와대로 부터 최초로 승인받아 국적선사가 운항토록하는 등의 업적을 남겨 한국해운업 발전에 여러가지 큰 일들을 남긴 인물이다.
해사 행정일원화 문제와 관련해서는 평소 언론인과의 회견이나 인터뷰 등을 일체하지 않기로 유명했던 그는 기자에 대해서는 만사를 제체놓고 만나 주어 현안에 대한 평소 견해를 사심없이 털어 놓았다. 그의 논리는 바다를 중요시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가 잘 살 수 없기에 이와 관련된 정책집행 수립 등이 한곳에서 추진돼 그에 따른 효과를 가일층 배가 시켜야하고 민관의 협력을 돈독하게 도출하여 그 밑 바탕을 만들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렇듯 고인된 지철근, 이맹기 전 회장은 우리나라 해양발전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평생의 직업으로 활약했던 인물로 해양수산부를 만든 핵심 인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