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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국사와 성철스님의 논쟁을 통해 본 북한 변화 10년

인민경제 앞세운 북한의 신년공동사설


[기고] 통일부 이주태 개성공단개발기획팀장


“정원에 못된 나무가 생겨났으니 베어버리지 않을 수 없다(毒樹生庭 不可不伐).”

성철스님이 보조국사 지눌의 돈오점수(깨닫고 나서 점차적으로 계속 닦아나감)설을 비판하며 일갈한 말이다. 내가 본 글 중에서 가장 가차 없는 비판의 말이다. 보조국사가 누구인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돈오점수설로 우리나라 불교사상사의 한 획을 그은 것으로 추앙받고 있는 고승 아닌가?

  

성철스님은 이 역사적인 돈오점수설을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 무엇을 제시했는가? 바로 그 유명한 돈오돈수(불심의 이치를 단번에 깨달아 단번에 닦음)설이다. 그러나 돈오돈수가 과연 실천론 차원에서 가능한 것이냐 하는 근본문제가 제기되어, 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이 심오한 사상체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벅찬 일이다. 다만 필자는 지난 1997년, 2002년, 2007년 이렇게 5년 단위로 북한의 신년사설을 비교분석하다가 만약 보조국사와 성철스님이 필자와 같은 작업을 하신다면 북한에 어떤 조언을 하실까 하는 엉뚱한 마음이 들어 감히 두 분의 사상을 거론해 본 것이다.

  

북한의 신년사설은 매년 벽두에 지난해의 성과를 총괄하면서 한 해의 대내, 대남, 대외 정책의 기본방향을 밝히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1일 당·군·청년보에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했다.


사상보다 인민경제부문 앞세운 2007년 공동사설

  

올해 북한 신년사설의 가장 큰 특징은 경제정책을 최우선으로 언급하고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년사설의 구성과 내용면에서 인민경제부문을 제일 앞세운 것이 특징이라는 말이다.

  

2007년 사설은 ‘승리의 신심 드높이 선군조선의 일대 전성기를 열어나가자’ 라는 제목하에 첫 번째 과업으로 “사회주의 경제강국 건설을 위한 공격전을 힘차게 벌여 나가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어 “오늘의 총진군의 주되는 과업은 인민생활을 빨리 높이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으면서 우리 경제의 현대화를 위한 기술개선을 다그치고 그 잠재력을 최대로 발양시키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이와 같은 2007년 사설의 이례적 측면은 1997년 사설과 2002년 사설을 비교하면 보다 잘 드러난다. 사설의 구성면에서 보면 1997년에는 사상분야를 우선 언급하고 이어 경제, 군사, 당, 남북관계 순으로 서술하였다. 2002년 사설도 사상분야를 우선 언급하고 이어 군사, 경제, 당, 남북관계 순으로 정책을 밝혔다. 북한과 같이 형식과 서열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이렇게 신년사설의 순서가 바뀐 것은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경제분야 정책내용도 구성의 변화를 담보할 만큼 달라진 용어와 새로운 개념을 선보였다. 현 시점을 ‘과학기술시대, 정보산업시대’로 규정하고 ‘경제의 현대화’를 내세우면서 ‘질 좋은 소비품’ 건설사업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질적으로 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시대규정을 한 발상도 그렇거니와 ‘질’좋은 소비품 건설을 언급한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질(Quality)이라는 것은 양(Quantity)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용어라고 볼 수 있다.

  

1997년에도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며” 등의 문구는 등장하지만 ‘실리’니, ‘혁신’이니 하는 개념은 보이지 않는다. 2002년 사설에는 “고정화된 재래식 방법이 아닌 혁신적 안목에서 통 크게 일판을 전개하자”고 하면서 분명한 변화의 모습을 보였고 2007년에 와서 현대화, 질 좋은 소비품까지 나아간 것이다.

또 하나, 2007년 사설에서 “창조와 건설에서 ‘지식’은 최대의 재부”라고 한 점도 1997년에 “사회주의가 없으면 지식과 기술도 무용지물”이 된다고 한 것과 비교하면 특기할 만하다.

  

2002년 사설에서 북한은 “변화된 환경과 우리 혁명실천은 ‘경제관리’를 혁명적으로 개선 완성하는 것을 절박한 요구로 제기하고 있다”라고 쓰면서 그 해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예고한 바 있는데 2007년 사설의 경제분야 강조가 올해 어떤 정책으로 구체화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남분야 중심테마는 6·15 남북공동선언…미국 비판 자제

  

대남분야의 변화는 아무래도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뚜렷하게 나타난다. 상호 체제인정의 토대 위에서 대남전략을 구사하는 모습이 역력해졌다. 1997년에 강조되었던 고려연방제, 범민족대회 등은 2002년, 2007년 사설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남조선 괴뢰 운운도 사라졌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그 빈자리를 채우며 중심테마로 등장했다. 다만 북한은 여전히 미군철수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또 2007년 사설에서 우리 특정정당을 거론하며 반보수대연합 실현을 촉구하는 등 구태를 되풀이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대외개방 의지는 2002년 사설에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2007년에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이는 UN의 대북제재 영향으로 보인다. 2007년의 특징적인 사항은 진행 중인 6자회담, 대미협상 등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면서 대미 비난 강도를 약화시킨 것이다. 2002년에는 미국을 분열주의 세력, 호전세력 등으로 강도 높게 비난한 바 있다. 이는 북한이 6자회담, 금융협상(BDA) 등에서 제기된 미국 측의 제안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먼 친척들은 오랜만에 만난 우리 딸 아이를 보고 “많이 컸구나”며 놀라곤 한다. 일년 단위로 보면 잘 보이지 않던 북한의 변화 흐름도 5년 단위로 보니 보다 분명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북한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아직도 북한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주체사상과 선군정치를 바탕으로 한 김정일 독재체제 유지에 정책의 최우선순위가 있고 계획경제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북한의 경제관리분야 개선, 특구 개방, 대남관계 개선 등을 주목할 만한 흐름으로 평가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려 한다. 1970년대 말부터 특구설치 등 개방, 개혁을 추진한 이래 오늘에 이르러 발달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이룩한 중국과 베트남의 점진적 변화사례는 이러한 주장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이들 국가들 또한 정치적으로는 아직도 일당독재이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최근 북한의 변화가 근본적인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점진적 변화를 ‘의미있는 변화’로 평가하는 시도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북한의 미래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일차적으로 북한에게 달려있다. 돈오돈수적 입장에 있는 분들은 이렇게 조언할 것 같다. “변화의 필요성과 방향을 깨달았으면 지금 당장 근본적 개혁을 실행하라.” 돈오점수적 입장에 있는 분들은 “보다 속도를 내는, 중단 없는 개혁”을 주문할 성 싶다. 그러나 북한이 취해야 할 첫 조치에 대해서는 두 학설 모두 똑같은 목소리를 낼 것이다.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고 한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라.”

  

앞에서 북한의 미래가 일차적으로 북한에 있다 했지만 우리의 역할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북한의 내정간섭적 선동과 같은 행위는 더 이상 자라기 전에 분명한 선을 그어 내쳐야 한다. 반면 북한의 실용주의 흐름, 개성공단 사업과 같은 정상적 상거래 행위는 적극 장려하여 북한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6자회담과 남북관계 복원 등 북한이 안심하고 필요한 변화를 추진할 수 있도록 총체적 평화프로세스를 마련해 가는 방안도 우리가 적극 검토해야 할 일이다. 북한이 ‘지식이 최대의 재부’라고 한 점에 착안, 금년에는 남북 간 지식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이 모든 일이 지속적 교류협력과 대화를 통해 북한의 변화여건을 조성하고 평화를 창출하고자 하는 우리 정부 대북정책의 과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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