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칼럼= 유명강사 부부동반 자살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 될 수 없다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더불어 행복을 누릴 권리 또 가지고 있다. 행복(幸福)은 삶의 만족과 보람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동서고금 누구나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행복한 삶을 원한다. 육체적으로 온전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하며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무랄 것 하나 없고 인생의 참 맛을 내는 행복한 삶을 원한다.
그러나 누구나 꿈꾸는 그러한 완벽한 행복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건강을 잃을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나약해져 있거나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행복을 방해할 수는 없다. 사람은 작금의 행복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의 행복을 얻기 위해 달려 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부족하지만 그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행복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삶에 대한 의욕을 준다. 미래에 도전할 수 있는 무한에너지와 힘 그리고 용기를 가져다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행복한 삶을 살며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을 따르고 존경한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일컬어 “행복 전도사”라고 칭한다. 지난 7일, 대한민국 “행복 전도사”로 알려진 유명강사 최윤희 씨가 오랫동안 앓아온 지병인 폐, 심장 질환으로 인한 심한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를 따랐던 다양한 사람들에게 또 다른 공포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그녀를 통해 행복의 파랑새를 찾았고, 웃음을 찾고 새로운 삶의 의미와 목적, 활력을 얻은 모든 사람들에게 허탈감, 상실감을 주고 있다.
행복을 잃고 삶에 희망이 없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의 네비게이션이 되어 주었던 그녀. 행복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에게 롤 모델(Role Model)이 되었던 그녀. 많은 사람들의 인생 스승이 되어 주었고, 조언자가 되어 주었으며 대한민국 각 가정에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기에 그녀의 극단적인 선택에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자살(suicide), 자살의 어원은 라틴어의 sui(자기 자신을)와 cædo(죽이다)의 두 낱말의 합성어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자살이란 그 원인이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당사자가 자유의사(自由意思)에 의하여 자신의 목숨을 끊는 행위를 말한다. 자살을 선택하는 이의 심정이나 상황은 모두 다르고,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이겠지만, 그 정의는 너무나도 간단하고 명백한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작은 필자가 어찌 그녀의 소소한 일상사까지 알 수 있겠는가? 얼마나 큰 육체적 고통을 느꼈는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마는 그녀에게서 희망을 얻고 웃음을 되찾고 다시금 잃어버린 행복을 찾고 믿고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좀 더 강한 정신력으로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는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진정 그녀가 추구했던 행복을 대한민국 전 국민들에게 심어 주지 않았을까? 그녀에게 찾아온 육체적 병마마저도 이겨냈다면, 그 육체적 고통마저도 내 삶의 일부분, 하나의 행복이라고 받아들였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구나!” “이렇게 살아야 현명한 사람이 되는구나!” 하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결국 행복을 버리고 불행을 선택했다. 인생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또 그 어떤 이유로도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녀의 불행한 선택으로 인해 그녀가 그 동안 외쳐왔던 행복의 조건들은 이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어로 사회층 고위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귀족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한다.
이는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 정신을 기본으로 한다. 최씨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여성리더였다. 그랬기에 그녀의 불행한 선택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 이유이다. 그녀가 강연과 방송에서 했던 말, 행동들이 실제 그녀의 삶과 일치했다면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겼을 것이다. 아무쪼록 보다 나은 고통이 없는 영원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신 고인의 명복을 빈다.
끝으로 우리 국민들도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그 고귀함을 인지했으면 한다. 우리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세상에 나오지만, 우리의 선택으로 새 생명을 만들어 낸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 개개인은 위대한 존재이며, 존경받을 존재이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힘들게 하고 많은 역경들을 가져다 놓아도 우리는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 고로 인간 생명의 주권은 신께 있기 때문이다. 자살은 신의 주권영역에 대한 중대한 침해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생명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李昌虎(49, 사진,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