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전략 = 이인제
신임 국방부장관은 북이 다시 도발하면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교전규칙과 상관없이 공중 폭격을 감행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하였다. 미국도 이를 양해하였다고 한다. 군사작전에 관한 한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해나가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표현을 정확히 하여야 한다. 자위적 조치는 우리의 고유 권한이며, 별도의 미국 승인이 있을 필요가 없다.
연평도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국민의 의식도 많이 변하고 있다. 북의 정체(正體)를 똑바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왜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았느냐는 여론이 들끓는다. 이 여론에 놀라 대통령과 신임 장관이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면, 이 또한 큰 문제이다. 대통령과 장관의 머리 속에 냉철한 전략이 세워지고, 그 전략의 일환으로 강경대응방침이 선언되고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 것이지 걱정이 앞선다.
나는 경기지사를 하면서 임진강 유역을 자주 둘러보았다. 자유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해본 사람은 누구나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북은 너무 가까이에 있다. 서울을 빠져나가 10분도 되지 않아 통일전망대에 오르면 눈앞이 북한 땅이다. 연평도가 북에 가까워서 포격을 당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의 계산이 서울이라면 지금이라도 서울에 소나기처럼 폭탄을 퍼부을 수 있다.
무슨 서해 5도를 대만의 금문도처럼 요새화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러면 거기에 얼마나 막대한 돈이 들어갈 것인가. 프랑스가 독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국력을 기울여 구축한 마지노선이 무용지물이 돼버렸던 고사(故事)를 떠올릴 필요도 없다.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서울이 있는데, 그런 적을 막기 위해 서해 5도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겠다는 어리석은 발상이 왜 나오는지 개탄스럽기만 하다.
또 지금 들리는 대응논리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탈리오의 법칙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북이 한발을 쏘면 우리가 열 발을 쏘아 보복하는 대응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대증요법(對症療法)만 가지고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북 도발의 근원이 무엇인지 꿰뚫어 보아야 한다. 바로 북의 퇴행적인 체제가 길이 막혀 도발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그러므로 이 도발은 우연이나 1회성이 아니라 반복되고, 더 지능적인 도발로 격화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여기에 대비해야 하며, 북의 저 퇴행적인 체제가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이루어내야만 도발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과 장관은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도발을 끝낼 근원적 처방 즉, 담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저 국민의 여론에 호응하고, 잠시 북을 겁주는 차원에서 대응한다면 사태는 더 복잡하고 심각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북의 체제는 지금 어디를 향해 돌진하는가. 바로 핵무장 아닌가. 3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통하여 핵을 실전배치할 날이 눈앞에 닥치고 있다. 대통령과 장관은 지금 20대의 철부지 독재자가 머지않아 핵 가방을 들고 우리를 위협하는 사태를 상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저 포격에 대한 강경대응이나 뚱딴지같은 서해5도 요새화 같은 전략을 세우고 있다면, 이는 곧 국가의 불행으로 직결되고 말 것이다.
대통령과 장관의 담대한 전략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