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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인문화

숭례문 현판 원래의 모습대로 수리 후 제자리에 걸기로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숭례문 화재로 일부 훼손된 현판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숭례문 복구공사가 완료된 후 제자리에 걸기로 했다.


숭례문 복구자문단은 10월 8일 고증 및 기술분과 합동회의를 개최하여 지덕사 탁본 등 옛 자료와 현재의 현판을 비교·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숭례문현판 처리방안을 논의한 결과, 이와 같이 의견을 모은 바 있다.


숭례문 화재현장에서 수습된 현판은 보존처리작업을 위해 해체하여 분석한 결과, 앞판과 뒤판이 수십 개의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는 원래 한 부재였던 앞판이 한국전쟁 당시 포탄 파편 등으로 부분 훼손되어 결손 부위를 나무판으로 땜질식 수리를 하면서 지금과 같이 38조각으로 맞추어 보수 되었으며, 뒷면의 보강 덧판은 앞판을 고정하고 보강하기 위하여 15조각의 판재를 가로로 잇대어 붙여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지덕사에 소장된 숭례문현판 탁본자료를 대여받아 진위여부를 확인하고 일제 때 촬영된 유리건판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지덕사 탁본자료, 그리고 현재의 현판 글자를 비교·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하여 왔다. 그 결과 지덕사의 탁본에는 글자는 물론 현판의 나뭇결까지 동일하게 찍혀있어 진본임을 알 수 있었고, 당시 숭례문 현판글씨의 원형을 확인 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임을 확인했다.


또한 글자 형태의 비교결과 한국전쟁 시 훼손되어 보수된 부분 이외의 글자는 탁본과 동일하며, 탁본과 일제 때 유리건판사진의 글자가 같은 것으로 조사되어 현재의 현판은 한국전쟁 이후에 보수된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글자형태는 ‘崇’자와 ‘禮’자에서 개별 획 삐침의 형태, 폭, 연결 등에서 일부 변형된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덕사(서울 동작구소재 유형문화재 제11호)는 양녕대군(1394~1462)과 부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지덕사 관계자들은 현판탁본을 양녕대군의 후손인 이승보(李承輔 1814~1881)가 고종 2년(1865) 경복궁복원 영건도감 제조 재직 시 확보한 것으로 전언하는데 이는 19세기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李裕元 1814~1888년)의 『임하필기(林下筆記, 1871년)』에서도 이승보가 숭례문 현판 개색(改色)을 직접 확인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1865년에서 1871년 사이에 탁본이 이루어 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숭례문 현판은 지덕사의 탁본자료를 근거로 더 많은 고증자료를 확보하여 원래의 모습대로 수리할 예정이며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과 서예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완벽한 수리로 원래의 자리에 현액(懸額)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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