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 친환경기술 컨퍼런스 2025… IMO 규제와 대체 연료로 그리는 지속 가능한 해운의 미래

한국선급(KR, 회장 이형철)은 9월 18일 서울 더 플라자호텔 다이아몬드홀에서 ‘KR 친환경기술 컨퍼런스 2025’를 열고 국제해사기구(IMO)의 강화되는 환경규제 대응 전략과 차세대 대체연료 기술 상용화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이번 컨퍼런스는 단순한 기술 현황 보고에 그치지 않고, 업계 전문가들이 현장의 경험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구체적 해법을 제시한 자리로 평가됐다.
한국선급 연구본부 김대현 부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IMO의 중기조치가 시행되면 모든 선사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며 “규제 대응은 단순한 선택이 아닌 업계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선급의 역할을 “감독자가 아니라 업계와 함께 고민하는 동반자”로 규정하면서, 이번 컨퍼런스가 해운·조선업계의 공동 대응 방안을 찾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IMO 규제 대응, 현장의 실질적 고민과 해법
첫 번째 세션은 IMO 중기조치(Mid-term Measures) 대응 전략에 초점을 맞췄다. 가장 먼저 발표에 나선 한국선급 친환경기술팀의 이정엽 수석은 선급 차원에서 준비 중인 실천 전략과 서비스 지원 체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IMO의 규제는 선박 자체의 성능을 넘어 운항 관리, 연료 선택, 항로 운영까지 영향을 미친다”며, 단순히 기술 인증을 넘어 실질적 운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선급은 이를 위해 ▲선박 성능평가 ▲탄소배출 모니터링 ▲규제 적합성 검증을 아우르는 ‘통합 지원 체계’를 준비하고 있다. 이정엽 수석은 “규제를 지키기 위한 형식적 대응이 아니라, 선사들이 실제 운영에서 이익을 볼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며, 선급이 규제의 ‘장벽’을 낮추고 산업 혁신의 ‘촉매제’ 역할을 하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영선 팀장(HMM)은 선사의 실질적 대응 전략을 생생히 전달했다. 그는 “IMO 규제 대응은 단순히 벌점을 피하는 수준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전제했다. HMM은 이미 ▲연료효율 개선장치 도입 ▲운항 최적화 프로그램 ▲차세대 연료 전환 준비를 동시에 추진 중이다. 김 팀장은 특히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특정 항로에서 속도 조정과 연료 절감 장치를 병행한 결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크게 줄이면서도 연료비 절감을 달성한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효율과 친환경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확인했다”며, 선사 차원의 노력이 산업 전체의 신뢰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 번째 발표자인 한국선급 선박해양기술팀의 김민수 책임은 연구와 실증 결과를 바탕으로 연료절감장치의 효과를 검증했다. 그는 발표에서 실제 시험 데이터를 공개하며 “기술이 시장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체감이 아니라 수치로 입증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추진 효율 개선 장치를 적용한 선박은 평균 연료 소비가 3~5% 절감됐고, 이는 곧바로 배출량 감소와 운영 비용 절감으로 이어졌다. 김민수 책임은 “투자자는 실증 데이터로 설득해야 하며, 데이터 기반 검증이야말로 기술 발전의 토대”라고 강조했다.
첫 번째 세션의 마지막 발표를 맡은 한국선급 시스템안전연구팀의 정정호 팀장은 ‘탄소중립 연료 기반 녹색해운항로’라는 보다 거시적인 주제를 다뤘다. 그는 “개별 선박의 기술 개선만으로는 글로벌 목표 달성이 어렵다”며, 특정 항로 단위로 친환경 연료 인프라를 조성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팀장은 예시로, 아시아-유럽 간 주요 항로에 친환경 연료 공급망을 우선 구축하고 이를 국제 협력으로 확대하는 구상을 제시했다. 그는 “해운산업은 본질적으로 네트워크 산업이므로, 규제 대응 역시 개별 기업이 아닌 항로·지역 단위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체연료, 기술적 가능성과 상용화의 난제
두 번째 세션에서는 미래 해운산업을 이끌 대체연료 선박 적용 기술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먼저 김세미 팀장(한화파워시스템)은 암모니아 가스터빈 개발 현황을 발표했다. 그는 “암모니아는 연소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연료로 주목받고 있지만, 연소 안정성 부족과 독성 문제라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실제 실증 시험에서 나타난 연소 불안정 사례를 언급하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연소 제어 기술과 안전 설계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암모니아는 대량 생산과 저장 인프라가 이미 갖춰져 있다는 장점이 있어 상용화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해상 적용에서는 안전 규정 마련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이어 성영재 상무(HD한국조선해양)는 조선소 관점에서 대체연료 적용 기술개발 현황을 설명했다. 그는 “암모니아, 수소, 메탄올은 각각 물리적 특성과 안전 요구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조선소는 ‘다중 설계 전략’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 상무는 실제 조선소가 설계 단계에서 연료별 조건을 반영한 사례를 소개하며, 국제 선주들이 요구하는 선박 사양을 얼마나 빠르게 충족하느냐가 조선 경쟁력을 결정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술 개발은 더 이상 연구 차원이 아니라, 수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라고 강조했다.
한국선급 대체연료기술연구팀의 노길태 수석은 액화수소운반선의 기술 현황과 전망을 발표했다. 그는 “액화수소는 에너지 전환 시대의 핵심 연료지만, –253℃라는 극저온과 고압 상태를 동시에 다루는 기술이 필요하다”며, 현재 국제 안전기준이 미비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노 수석은 실제 설계와 시험 과정에서 드러난 위험 요소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안전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수소경제와 해운산업이 만나는 지점에서 한국이 선도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며, 국제 표준화 과정에서 한국선급이 적극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마지막 패널토론은 한국선급 연구본부 송강현 소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해양수산부 박인성 사무관과 발표자 전원이 참여해 활발한 토론을 이어갔다. 패널들은 “규제 준수와 상업적 경쟁력이 충돌하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특히 선박 단위의 대응을 항로·네트워크 단위로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조됐다. 이는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드러낸 대목이었다.
이번 ‘KR 친환경기술 컨퍼런스 2025’는 단순한 기술 나열을 넘어, 각 발표자가 현장에서 얻은 경험과 실증 데이터를 공유하며 독자적 시사점을 던진 자리였다. 참석자들은 “발표 내용이 현장에서 바로 참고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었다”며, 해운·조선업계가 규제와 기술, 시장 사이에서 나아갈 길을 확인한 의미 있는 교류의 장이었다고 평가했다.